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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그건 너!

성음(SEL 20 0015), 19730620

이용우 garuda_in_thom@hotmail.com | editor
이장희와 동방의 빛, 포크에 플러그를 꽂다

이장희를 음치 가수로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당대(當代), 그러니까 이장희가 데뷔하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970년대의 얘기다. 멀리 트로트 가수나 그룹 사운드의 싱어와 비교할 필요 없이, 송창식이나 조영남 같은 성량이 풍부한 가수, 반대로 김세환이나 윤형주처럼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가수와 단순 비교한 결과였을 듯하다. 되는대로 부르는 듯한 이장희의 노래는 성의 없게 들리고 상대적으로 음정이나 박자의 어긋남이 귀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그런 솔직한 창법이야말로 이장희를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은 매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적 계기가 된 음반이 3집 [그건 너!]이다.

[그건 너!]는 1973년 발표된 가요음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판매량을 기록한 '대박' 음반이다. 1972년 데뷔 앨범 [영 페스티벌 Vol. 1(이장희)](유니버어살), 2집 [영 페스티벌 Vol. 4(이장희 2집)](유니버어살)로 서서히 주가를 끌어올리던 이장희는 3집의 타이틀 곡인 "그건 너"의 대 히트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 같은 입말(口語)에 가까운 표현, "전화를 걸려고 동전 바꿨네 종일토록 번호판과 씨름했었네" 같은 상큼한 표현, 그리고 "그건 너"라는 직설적인 화법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고, 이장희의 털털한 보컬은 그 가사들을 실어 나르는데 적격이었다.

그게 다였을까? [그건 너!]를 단지 이장희의 히트 음반으로만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음반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이 음반은 이장희의 세 번째 솔로 앨범인 동시에 (후에 '동방의 빛'이란 이름을 갖게 되는) 밴드의 멤버십을 실질적으로 가지고 만든 첫 음반이기도 하다. 동방의 빛이란 밴드 이름은 음반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음반의 뒤 표지에 적혀 있는 연주자 명단은 이들의 존재를 알려준다. 강근식(일렉트릭 기타), 이장희(보컬, 리듬 기타), 조원익(조원익), 배수연(드럼)이 그들이다.

동방의 빛이란 팀워크가 아니었다면, 이 음반의 성공은 절반만 가능했을 것이다. 하나의 동기(두 마디)에서 한 마디 노래하고 한 마디 쉬는 형식을 애용하는 이장희의 자작곡들은 기타, 베이스, 드럼 등 다른 파트의 '반주' 이상의 '합주'로 어우러지면서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건 너"가 대 히트했던 요인을 분석하면서 출중한 악기 연주와 편곡을 빠뜨려선 곤란하다. 배수연의 드럼은 그리 나서지는 않지만 세 번째 박자에 액센트를 주며 특이한 리듬감을 주다가(버스 부분) 백비트로 변화하고(코러스 부분), 대신 조원익의 베이스 기타는 저음부를 가로지르며 종횡무진 누빈다. 물론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강근식의 기타이다. 버스 부분에서 잔잔한 물결이 파문을 그리듯 퍼져나가는 연주를 펼치다가, 그 유명한 코러스 부분에서 이장희의 노래와 '매기고 받는데' 이는 그 부분을 '핏대 세우며 "그건 너~" 하고 싱얼롱'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다른 곡들도 대부분 기타, 베이스, 드럼만으로 충분하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연주와 편곡이 잘 짜여져 있다. 1집에 실려 인기를 모은 "그애와 나랑은"과 "친구여", 그리고 2집에 실렸던 "애인"과 "비의 나그네"의 재녹음 버전은 원래 버전에 있던 오르간 연주를 과감히 생략하는 대신 '일렉트릭하지만 명징한'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강근식의 기타는 "그애와 나랑은"의 버스 부분에선 마디마다 트릴 주법(해머링과 풀링을 빠르게 반복하면서 원음과 도움음을 빠르고 연속적으로 반복하는 주법)으로, "친구여"와 "그애와 나랑은"의 코러스 부분에서는 클린 톤의 하모니를 이루며 미끄러지듯 연주하면서, 빈 사운드를 감싸는 것 이상으로 곡을 주도하고 있다. "애인"과 "비의 나그네"는 원래 버전이 어쿠스틱 기타 위주인 데 비해 새 버전은 일렉트릭한 연주로 탈바꿈했다.

전체적으로 1집에 비하면 오르간이 빠져서 간결함이, 2집에 비하면 어쿠스틱 기타가 한발 물러나 있어 일렉트릭함이 돋보인다. 'All These Songs Are Came From A Room'이란 표지에 적힌 문구와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사운드이다. 방(구석? 화실로 추정되는 실내 공간)에서 만들어진 곡들치고는 뜻밖의 일렉트릭 사운드라는 의미다.

그런데 사실상 이 음반은 이장희와 강근식의 이중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음(知音) 사이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강근식은 보컬이 나오는 와중에도 부단히 주요 리프나 장식적인 음을 연주하고, 코러스 부분에서는 어김없이 보컬과 매기고 받는다. 이장희의 보컬은 일반적인 포크 가수처럼 보컬이 명징하지 않지만, 강근식의 기타는 딜레이와 벤딩 등 다양한 이펙트와 주법을 활용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클린 톤의 분명한 느낌을 준다. 그의 기타 연주는 일렉트릭하지만, 로킹하지는 않다. 가령 잔잔하고 부드러운 "촛불을 켜세요"는 아기자기하고 이국적인 기타 연주로 맛깔스러운 느낌마저 준다.

[그건 너!]를 계기로 이장희와 동방의 빛은 하나의 음악 어법을 정립하게 된다. 그걸 단순히 포크 록으로 지칭하는 것은 간편하긴 하지만 일면적이다. 이 음반에서 들려주듯 이들은 쳇 앳킨스(Chet Atkins) 풍의 컨트리 "자정이 훨씬 넘었네"부터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영향이 느껴지는 "당신은 누군가요", "누구일까"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지 않은가. 이 음반은 이장희 개인에겐 스타의 지위를 안겨주었으며, 동방의 빛이 당대의 포크 걸작들의 숨은 조연을 맡게 되리라는 걸 예견케 했다. 달리 보면, 이 음반은 포크의 다양한 진화와 변이, 그 중에서 '플러그를 꽂은 포크'의 한 가능성을 남겼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단촐하게 노래하던 포크는 이제 대중화와 함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20021126

<부연>
1. 이장희는 1973년 1월 1일부터 동아방송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0시의 다이얼]을 진행했다. [0시의 다이얼]과 3집 [그건 너!]는 모두 인기가 높았다. 선후 관계를 떠나 이런 게 시너지 효과가 아니겠는가.
2. 동방의 빛의 멤버들은 이장희를 제외하곤 원래 성음레코드의 세션 맨들이었다. 이장희와 강근식은 이미 1968년부터 절친한 친구사이였고, 조원익, 배수연 등은 레코딩 세션 맨으로 활동하면서 호흡을 맞췄다. 동방의 빛은 1973년 봄, 강근식의 군 제대와 이장희의 음반 녹음을 계기로 이장희, 강근식, 조원익, 배수연이 의기투합하여 결성되었다(이후 배수연 대신 유영수가 들어오고 건반의 이호준도 새로이 가세하는 멤버 변동을 겪는다). 이들은 4월과 5월, 송창식 등의 음반 녹음에 참여하면서 최고의 레코딩 세션으로 이름을 날렸다. 해체 이후에는 각각 영화음악, CM송, 레코딩 세션 등의 분야에서 명성을 이어나갔다.


수록곡
Side A
1. 그건 너
2. 촛불을 켜세요
3. 그 애와 나랑은
4. 당신은 누군가요
5. 친구여
Side B
1. 누구일까
2. 자정이 훨씬 넘었네
3. 애인
4. 비의 나그네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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