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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K

처음에는 그냥 노래자랑 정도로 알았다.
케이블TV 에서 하는

하도 들리는 이야기도 많고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TOP3 재방송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10월 22일 금요일
신문에 존박과 허각의 대결이라는 기사를 보고
금요일 하는 것도 알았다.

왜 그리 슈퍼스타에 열광할까
금요일 조금 늦게 집에가서 케이블 TV를 트니
슈퍼스타케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저거나 함 볼까.

비쥬얼의 이미지에 맞는 깔끔한 도회적 이미지의 존박
그리고 털털한 노무자 스타일의 허각

참 재미있는 대결 구도이다.


누가 우승하든 차치하고라도 양 대결은 무척 흥미?다.
서로 극과 극의 두 인물

노래의 대결은 시작되고
우열을 가리기 보다는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그런 대결이라고나 할까.

두 노래의 대결이 끝나고
심사위원 점수
이승철 99점
엄정화 울먹이며 심사평 99점

점수로도 전화투표로도 는 허각의 승

환풍기 수리기사의 감동스토리

충분히 시청율이 올라갈 만하다.


트위터는 발표와 함께
타임라인을 온통 슈퍼스타로 도배를 한다.


엄청난 관심이다.

케이블TV에서도 이렇게 성공한 프로그램이 생기다니.

슈퍼스타K2의 성공요인

1. 조선시대의 과거제도 같이 실력있는 사람이 일등할 수 잇는 프로그램
- 개천에서 용날 수 있는 제도
- 연예 기획사에서 만들어 지지 않은 순수함

2. 참가자의 일상을 엮는 스토리 텔링
- 아마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
- 그냥 단순 노래가 아닌 그들의 일상을 통해 같이 시청자와 호흡


3. 아이돌 가수에서 벗어난 새로움의 추구
- 진정한 음악으로 승부를 거는 새로운 얼굴을 선보임으로로 인한 참신성
- 늘 듯는 그렇고 그런 음악에서 벗어난 새로움

4. 문자 투표에 의한 순위의 불확실성
- 실력의 공정성 결여에 의한 말이 많은 부분이기도 하지만 꼭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닌
대중의 선호도에 의하여 승부가 갈리는 예측불허의 설정

여기서 수스케2에서

지나간 영상으로 보니 김지수와 장재인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위하여 저런 친구들이 많이 나오고
방송을 많이 타야 하는데 라는 생각

5. 심사위원 및 심사평

윤종신 : 노래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것은 필수다.
프로무대로로 나오면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아느냐
그 세계에서 살아 남으려면 단수히 노래르르 잘하는 거시 이산 자기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ㅇ신
윤종신으로는 충분히 그런 심사평을 할 수 있다. 자기 노래는 자기의 객깔이 분명히 있으니까.

프로의 세계에서는 100% 실력 다시 말해 노래하는 기술만으로는 안된다.

이승철 : 그냥 노래만 잘하면 안된다.
가슴을 울리는 마음으로 들어오는 가슴을 우리는 그런 음악을 하여야 한다.
이승철이라는 가수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심사평
이승철의 초기 노래들은 그냥 노래가 아닌 또다른
말로 표한하기 어려운 가슴으로 전달되는 그 무엇이 있었으니까

6.무대 및 진행

- 외국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설정
- 점수화 시켜 실력을 판단

이번 수퍼스타케이 전체를 다 보지는 못하였다.
TOP3재방송과 그리고 최종결승을 보았다.

그러고 그동안 올라왔던 출연자들은 유투브로 보았다.


아까운 장재인(사진상)과 김지수(사진하)
노래 정말 개성있게 잘 하던데.
비주류 음악의 도전에서 오는 참신성
아 좋다.

잠시나마 나를 즐겁게 한다.


앞으로 대중음악의 발전을 위하여 음악활동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처음부터 봐야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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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날으는종이배
|



인천 송도 펜타포트락페스티벌

올해 여름 중요한 락페스티벌이 2개가 있었다.

하나는 인천 송도 펜타포트락페스티벌

그리고 또 하나는 지산락페스티벌

펜타포트를 같이 준비하던 옐로라인이 펜타포트와는 별개로

지산에 또 다른 락페스티벌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락페스티벌이 양분이 되었다고.

라인업은 지산이 더 화려하다.

지산은 오아시스가 온다.

그리고 국내밴드로는 김창완밴드,크라잉넛,델리스파이스, 언니네이발관,장기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요조등이 지산으로 간다.

펜타포트는 신해철, 검정치마, 허클베리핀, 소규모아카시아밴드 등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나의 페스티벌로 갔으며 더 풍성한 락페스티벌이 되었을 텐데.

얼마 되지 않는 락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더 많이 좋아하고

우연히 펜타포트 표를 구해

우리는 송도 펜타포트로 간다.

간만에 락을 즐기러 간다.

내비가 가라는 대로 복잡하게 꼬불꼬불 길을 따라 간다.

인천 송도

주차를 하고

캠핑장에서 와인을 한 잔 하고

적당히 취기를 돋우고

공연장으로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린다.

들어가 보니 어서 많이 듣던 음악

검정치마다.

요즘 대중음악은 다양성이 많이 부족하다.

매스컴에서 쏫아져 나오는 여성그룹의 댄스 음악들

다양한 음악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는데

부족한 면이 많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의 상업성이라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는 거지만

획일화 되지 않고 다양성이 살아있는 사회

그런 음악들이 많히 나와야 하는데

하여튼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현주소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초여름

다행히 비는 안온다.

햇볓을 가려주는 좋은 자리에

자리를 펴고 앉아

음악을 듣고

밴드도 보고

락도 접하고

즐거운 시간들은 흘러가고

2009년 여름은

이렇게시작되었다.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

30대 중반을 넘어선 포크송 올드 팬들에겐 추억 저편에 아지랑이처럼 살아 움직이는 노래가 있기 마련이
다. 그중의 하나.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났던 하얀 그 때 꿈은..." 가수 이름조차 기억속
에서 흐릿하지만 불현듯 뇌리에 떠오르는 이 노랫말과 우수에 젖은 멜로디는 올드 팬들에겐 현재와 과거
를 이어주는 단단한 연결고리와도 같다.

바로 윤연선의 '얼굴'이다.

그녀는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70년대의 전형적 한국여성포크가수 1세대. 본인은 "직업가수도 아니었던
내 노래가 칼럼 소재가 될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오히려 놀라워 한다.

사실 영화배우인 오빠 윤양하와 성우인 언니가 없었다면 그녀가 인기가수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
로 여전히 감수성 강한 소녀 모습 그대로다.

1972년쯤 포크열풍의 중심이였던 명동의 음악모임에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참여하면서 시작된 그녀의 노
래 여정. 이때 어울린 음악친구는 4월과 5월의 멤버였던 이수만. 함께 방송국 구경을 가 인기 DJ 이종환
과 사귀고 중앙대 학군단 축제에서는 존 바에즈 노래도 불러 보았다.

72년 가을에 나온 데뷔음반은 DJ 이종환의 배려로 이수만과 함께 했다. 이수만이 대학 초년시절에 작곡
한 동요같은 습작들로 채워진 이 음반의 대표곡은 '내마음'. 윤연선 본인도 타워호텔에서 촬영한 음반 자
켓을 본 기억만 있을 뿐 발매사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단다.

첫 독집앨범 도 비슷하다.

그렇지만 이 음반엔 윤연선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동아방송 PD 이해성씨의 소개로 2기 '뚜아에무
아'를 결성하기 위해 녹음했던 '님이 오는 소리' '보내는 마음 가는 마음' 같은 숨겨진 곡들이 그 대상이
다.

"화음이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 발표하지 않았다"는 이필원의 고백에서 보듯 윤연선-이필원의 '뚜아에무
아'는 불발탄으로 끝났지만 우수에 젖은 듯한 두 사람의 하모니는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윤연선- 이필원
의 '뚜아에무아'가 못내 아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연선의 최대 히트곡 '얼굴'은 처음으로 자기의 음악을 내놓고 싶어 적극적으로 찾았던 곡이다. 작곡자
인 동도중학교(당시) 신규복 선생님을 찾아가 학교 강당에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즉석 테스트를 받아가
며 곡을 얻어냈다. '얼굴'은 원래 어린이를 위해 만든 동요였다.

DJ 박원웅이 기획한 <윤연선/박승용-지구JLS120849, 1974년10월11일>은 '얼굴'의 첫 음반이건만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음반이다.

지구레코드 전속악사의 트로트풍 '얼굴'연주와 파트너로 함께 수록된 박승용도 이질감으로 영 못마땅했
다.

깔끔하게 재무장해 발표한 음반이 <고아/얼굴-지구JLS120958, 1975년2월26일>. 타이틀곡은 오세은 편곡
의 '고아'였고 '얼굴'은 2면 머릿곡이었다. '고아'는 광주에서 처음 히트해 서울로 올라왔다.

"방송금지곡으로 묶여 부를 수 없게 됐을 때가 가장 속상했다"고 말할 정도로 윤연선의 최고 애창곡이
다. '고아'의 방송금지조치이후 '얼굴'은 대박을 터트리며 방송과 다운타운가의 주요 레퍼토리로 하루도
빠짐없이 울려 퍼졌다.

당연히 각 방송ㆍ음반사에서 출연 및 음반제작 제의가 밀려들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부담스러웠다고 한
다. 그저 노래부르는 자체가 좋았을 뿐 대중앞에 나서서 직업적으로 노래를 부를 자신도 없고 능력도 없
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홍보하거나 체계적인 음악공부에 몰입하고픈 음악적 갈증보다는 요청이 있을 때
만 고등학교나 대학축제무대에서 노래부르는 것이 마음 편했다.

이처럼 소극적인 윤연선 때문에 속이 탄 지구레코드는 은밀히 금지곡 '고아'를 삭제하고 '얼굴'을 타이틀
곡으로 한 재판을 발매하였다. '왜냐 묻지 말아요'등 4곡을 추가로 수록한 재발매음반은 날개 돋힌 듯 팔
려 나갔다. 그래도 어렵사리 구할 수 있는 재발매판에 비해 '고아/열굴'이 함께 수록된 초판 구경이 만만
치 않은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상상을 초월한 반응으로 지구레코드사 사장은 추가로 음반 취입을 제의하면서 거액의 수고비까지 내놓았
다. 윤연선은 "음반을 내면서 한번도 돈을 들이지도 받지도 않았다.

이때 받은 거액의 수고비는 노래를 한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회고한다. 이후 김의철 곡 '강매'
등으로 녹음준비에 들어갔지만 상업적인 음반관계자들의 작업 환경에 염증을 느껴 도중에 그만둬 버렸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중년의 윤연선. 요즘은 홍대앞에서 '윤연선의 얼굴'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자신의
노래를 기억해주는 팬들의 사랑에 행복해 한다.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엊그제는 떨리는 가슴을 추스리
며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복의 나라로' 포크30년 기념공연 무대에 나서 25년만에 대중들과 호흡을 함
께 했다.

'얼굴'을 듣던 중년의 관객들은 한 순간 "아! 이 노래가 윤연선의 것이었구나"라며 추억을 되새겼다. 팬
들의 변치 않는 사랑으로 그녀는 이제 '가수였음'을 행복하고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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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무


산꼭대기 세워진 이 불나무를
밤바람이 찾아와 앗아가려고
타지도 못한 덩어리를 덮어 버리네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 주는가를 음~


덩그러니 꺼져버린 불마음 위에
밤별들이 찾아와 말을 건네어도
대답 대신 울음만이 터져버리네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 주는가를 음~


산 아래 마을에도 어둠은 찾아가고
나돌아 갈 산길에도 어둠은 덮이어
들리는 소리 따라서 나 돌아 가려나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 주는가를 음~


작사,작곡,노래-방의경

통기타소리가요란했던1970년대명동에는전설적인남녀포크가수가있었다.서울미대의김민기와이름도생소한이화여대미대의방의경이주인공이다.방의경이김민기와더불어70년대청년문화를주도했던주역임을아는대중은별로없다.

당시그녀는한대수,김민기,김의철과같은저항적인창작포크곡을불렀던여대생포크가수였다.양희은이부른70년대의대표적인포크곡‘아름다운것들’과김인순,김세화가부른‘하양나비’그리고‘불나무’는대중이기억하는그녀의작품들.하지만“데모하는학생들이즐겨부른다”는이유로그녀의노래들은대부분방송금지의멍에를썼다.상업적인활동과는거리가멀었기에방의경은철저하게베일에가려진신비로운존재로남아있다.

그녀는서울서대문에서부유한사업가집안의1남3녀중막내로태어났다.1949년9월15일생.부친은서울피스톤자동차회사를운영하며한국최초의불자동차를만든발명가방응준씨.어머니는고아원아이들의엄마로불린사회사업가이정순씨다.
서너살때부터유행가를앙증맞게불렀던방의경은아버지회사에서최고스타였다.그리고동네친구들과어울려노는것보다자연을관찰하고주변사람들의삶에관심을보인별난아이였다.창문을열고떨어지는빗소리를한참듣다가바람부는언덕에올라비를맞으며노는막내딸의기이한모습에놀란어머니는서울대병원정신클리닉에데려가기도했다.

미동초등학교에들어가서도공부보다는멍하니창밖을내다보는이상한아이였지만합창단에뽑혀경무대(현청와대)에서노래를부르는재능을보였다.이대부중에진학해서는자연과의대화를글로쓰기시작했다.이대부고1학년부터악보도없이자신의노래를흥얼거리기시작했다.그때그녀는“대포를만들라”는군사정권의제안을거부해탄압받는부친의고통을보면서사회에대한깊은고민에빠졌다.당시접한존바에즈,밥딜런의저항적인포크가락이가슴에와닿았다.고2때오빠의일렉트릭기타를처음만졌고,이불을뒤집어쓰고혼자기타를배웠다.

무대에오른것은1968년이화여대장식미술과에입학하면서부터.교내축제에서노래를부르기시작한방의경은정미조와더불어이대미대의‘노래잘하는쌍두마차’로꼽혔고학생대표로월남위문공연길에오르기도했다.그런어느날이백천과작곡가길옥윤이OB맥주광고CM송을제의해왔다.이장희,김도향과함께방의경은장난삼아1분짜리CM송시험녹음에응했다.

대학시절가장기억에남는것은2학년축제때,작곡가이봉조가반주를맡고조영남이심사위원을했던문리대노래자랑대회.대중적인노래활동을반대했던아버지도이때딸의노래를듣고감격해값비싼야마하기타선물로미안함을씻었다고한다.반주를맡았던이봉조는2옥타브를넘나들며맑은음색으로노래하는방의경의바이브레이션에감탄하며‘하늘에서내려준맑은음성’이라고극찬했다.
이화여대메이데이때의일이다.이봉조는과대표로노래를한방의경을“집까지데려다주겠다”며자신의차에태웠다.도중에“잠깐들렸다가자”고해따라간곳은나이트클럽.그곳에는이봉조악단의전멤버들이기다리고있었다.연예인이되는것은꿈도꾸지않은방의경은정중하게집요한이봉조의픽업제의를거절했다.곡가길옥윤도비슷한사연을갖고있다.그역시곡을쓸때마다“이노래는방의경것”이라며‘제2의패티김’탄생을꿈꿨지만실패했다.길옥윤이그녀의대타로찾은여가수가한때절정의인기를누렸던혜은이라는사실은흥미롭다.


1969년말YWCA멤버였던방의경은이백천이주도한청개구리에자연스럽게참여했다.이시절김민기는가깝게지냈던동료였다.하지만그녀는김민기의‘귀하’라는창작곡을듣고음악적갈등을겪었다.“김민기의어둡고슬픈스타일보다는밝고맑게세상을보게할수있는곡을쓰고싶었다”는방의경은1970년첫창작곡‘겨울’을시작으로30여곡이넘는곡을창작했다.“곡을만들게될때가슴이벌렁벌렁뛰면서전깃줄에감전되듯저절로가사와곡이한꺼번에떠올랐다”
그녀는하루에몇곡을쓸만큼창작의물꼬가트였다.1970년초이백천과길옥윤이주도한‘음악으로세상을정화하는학생들’이라는캠퍼스쿠르세이더(학생십자군)에참여한방의경은김민기,송창식등모든통기타가수들과함께KBSTV에나가한차례합동공연을했다.

그해가을,선데이서울심근수기자의요청으로10여명의대학가노래친구들이대연각호텔옆에새롭게문을연음악감상실‘내쉬빌’에모여단체인터뷰를했다.내쉬빌주인은경기고출신으로정보국장의아들이었던이수일,기업체사장아들김무영(작고),가난했지만음악적기둥이었던김유복등3명이었다.최고의음향시설로한국포크의메카를꿈꿨던이들은상업적인가수들을배제하고진지하게창작곡으로노래하는사람들을우대했던한국포크음악의숨겨진개척자들이다.내쉬빌의역사는이들3인방의요청을받아들인방의경의개인리사이틀무대로시작되었다.
내쉬빌은전국에서무작정상경팀들이모여들며대학가포크싱어송라이터들의둥지로자리잡았다.어느날인기가수조영남이무대에서겠다고했지만거절당했다.내쉬빌은인기를위해활동한대중가수들을거부했던자존심이있었다.방의경은이곳의'두목'으로불리었고'방의경아워'가있는날이면관객을선별해입장시킬만큼특별한대접을받았다.평론가이백천은내쉬빌에대적하기위해음악감상실르시랑스를열었다.그녀는"배고픈음악후배들을위해가끔르시랑스에서개런티를받고노래했다"고기억한다.
이후방의경은청개구리첫공연과김민기의첫개인연주회에찬조출연하며활발한노래활동을펼쳤다.1971년말기독교방송PD김진성과평론가최경식이제작한김민기의독집음반을접한내쉬빌세주인들은충격을받았다.자극을받은이들은내쉬빌의음악을남기기위해음반을제작하자고했다.멤버들을만날때마다각각녹음을했다.당시방의경은기타세션을자청한미8군기타리스트그레그와함께'불나무'를녹음했다.내쉬빌주인들은수원시민회관에서'우리들'이라는3일간의역사적인포크공연을기획했다.방의경은첫날공연에참여했다.
500장한정본으로발매된'아름다운사람아름다운노래-유니버샬,1972'은이때의음원이담겨진소중한음반이다.두차례에걸쳐재발매된이음반은김민기의독집음반과더불어한국포크사에중요한명반으로자리잡고있다.
대학을졸업한방의경은72년4월청개구리에서개인리사이틀을필두로맷돌공연에도특별게스트로몇차례참여했다.이후김진성PD의6개월간설득끝에기독교방송'세븐틴'의DJ로나섰다.이때게스트로나온보성고3학년김의철과운명적만남을가졌다.이후두사람은의남매를맺어인생과음악적인연을지금껏이어오고있다.4개월남짓짧았던DJ생활을그만두고머리를식힐겸시골로여행을다녀오자성음제작소나현구사장이음반제작을청해왔다.

그녀의유일한독집음반<방의경내노래모음-유니버샬,1972년>은포크팬이면누구나가지고싶어하는음반이다.어두운사회현실을너무도맑고아름다운은유적인노랫말로표현한11곡은피끓는젊은영혼들에게위안을안겨주었다.그녀의노래들은단한번일지라도노래를듣고나면헤어나지못하게하는마력을발휘했다.이당시미8군가수장미리는그녀의노래에매료된동생장은아를데리고방의경의집으로찾아가노래를가르쳐달라고했다.그녀의노래'불나무'는암에걸린줄알았던환자에게생명의불씨를지펴준사연으로포크팬들사이엔유명하다.

박정철회현동R레코드사장은"방의경독집음반은6년전음반애호가들사이에존재유무를두고논란이벌어졌던귀한음반"이라고전한다.이음반은현재200만원을호가하며가요음반의여왕으로군림하고있다.하지만방의경은"독집은녹음도마음에들지않고재킷사진도레코드사에서일방적으로선정해큰애착이없다"고밝힌다.독집음반은발매즉시방송과판매금지조치가내려졌다.시중음반가게에진열되어있던그녀의모든음반은칼로그어져폐기되었다."'아름다운것들'을제외하고는거의모든노래가금지됐어요.데모하다죽은학생들의삶이슬퍼지은'하양나비'도그렇고'불나무'도사전에없는말이라며금지곡이되었어요"어느날그녀의이대선배인KBS라디오PD가"펑크낸가수의대타로노래를불러달라"며연락이왔다.성질이난그녀는남산의‘그곳’을은유한'검은산'을불러,그여파로프로그램이통째로심의에걸려취소되는일화를남기기도했다.이후한동안감시의눈길을받았던그녀는홍보협회에취직해우리문화를소개하는'헬로코리아'프로그램제작을맡았다.
1974년엔TBC'5?쳄?다이얼'의DJ를다시맡았지만억울한이유로3개월을넘기지못했다.DJ를그만둔어느날,이대부고동창의형이었던장충동스튜디오엔지니어의도움으로2집녹음에들어갔다.자정을넘어통금이되자문을잠그고비밀리에밤샘녹음을했다.이때녹음한‘하양나비’,‘마른풀’,‘검은산’등30여곡은시대의아픔에분노하고슬픔을어루만진방의경음악의진수였지만마스터음원이분실되어세상빛을보지못했다.

그녀는귀한우리문화를경시하고미국화되어가는사회분위기가싫어1976년결혼후이민을떠났다."미국땅에서문화대결을해보자"는의욕으로떠났지만이민초기뉴욕에서액세서리물품보따리장사를하며숱한고생과좌절을겪었다.1980년초에는LA로건너갔다.세계적인여배우엘리자베스테일러도그녀가만든벨트를차고TV에출연할정도로성공을했지만84년이혼의아픔도겪었다.1994년장신구사업관계로18년만에귀국해후배양희은과함께KBS2TV'심야에의초대'에출연했다.
방의경은2002년초인터넷사이트'윈드버드'에자신의게시판이생겼다는소식에귀를의심했다.그해11월다시귀국한것은잊어버렸던노래운동의불씨를되살리기위함이었다.그녀는자신의노래를잊지못하는많은팬들을확인하곤감동했다.
그녀는꽃피우기도전에가슴속에묻어둔자기음악의완성을위해다시오겠다는약속을남겼다.군사정권에의해생매장되고거세된그녀의모든노래들이온전한모습으로새롭게환생하는그날이기다려진다.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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