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새, 초원... 그리고 '땐스 투 더 뮤직!'
1970-1971년은 히 식스의 황금기였다. 1970년 그룹사운드들의 꿈이라 할 수 있는 '플레이보이컵 쟁탈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는 1970년 제2회에 이어 1971년(7월 16일부터 4일간) 제3회 대회까지 (록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한다. 이들의 황금기는 음반제작의 태도에서도 확증된다. '황우루 기획 작품집'이라는 부제를 보자. 황우루라는 존재가 작편곡자쯤 된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그는 단순한 '기획자'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 당시 실제 음악에 관여했든 아니든) 기성 작곡가 출신 '프로듀서'의 이름을 아예 삭제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을 자신들이 직접 음악을 통제 관장한다는 자의식을 천명한다. 전업 작곡가가 아니라 밴드가 직접 편곡, 프로듀싱을 (표기)했다는 점 외에도 저음부, 특히 킥 드럼(베이스 드럼)은 (여전히 잘 들리지 않지만) 이전보다 조금 낫게 들린다는 점 역시 레코딩 면에서의 진일보로 보인다. 1970년 말 경 재즈 공부하러 도일한 김용중이 탈퇴하고 최헌(세컨드 기타, 보컬)이 가입한 이외에 김홍탁(리드 기타)과 이영덕(리드 보컬, 기타, 오르간)(때때로 이들은 '더블 리드 기타' 시스템이 된다), 유상윤(오르간, 플롯), 조용남(베이스, 보컬), 권용남(드럼)은 안정적인 라인업을 이어갔다.
앞서 지적한 부분이 과거와의 절연이라면 다양한 음악적 열망이 구현된 점은 과거의 계승이 아닐까. 1971년에 발표한 이 음반의 두 곡은 '창작곡'인데 이 곡들을 각 앞뒷면의 머릿곡에 수록한 뒤 나머지에는 다양한 커버곡을 포진시켰다. 즉 소울(특히 모타운), 비틀즈 비트 팝, 칸쪼네, 포크 록 등까지도 자신들의 자장안에 포함시켰으며, 이 커버곡과는 다소 이질적인 주류 문법의 '가요' 스타일 노래를 타이틀로 내건 것이다. 두 창작곡들 "물새의 노래" "초원의 빛"은 히 식스 본인의 곡은 아닌데, "초원의 빛"은 히 식스(김홍탁)의 전원주의의 절정인 '초원' 시리즈의 완결판인 셈이다. 공포스러운(?) 가성의 여성 배킹 코러스 뒤로 '물새', '초원' 등 자연 소재에 걸맞는 파도 소리, 새 소리 등이 삽입되는 단조 '가요'다. 플롯, 오르간이 선율과 배킹을 담당하는 점도 비슷하다. 김홍탁 본인도 강조하지만 자연이 등장하는 작사의 측면 역시 당시의 관습과 단절을 이룬 점일 것이다(확대해석하면 신중현의 가사가 '도시의 거리(주로 명동 거리)'를 묘사했다면 키 보이스는 '해변', 히 식스는 '초원'을 노래했다. 둘 다 '갑갑한 현실을 떠나자'는 것은 같지만 키 보이스는 '해변의 쾌락과 낭만'을 구체적으로 그린 반면, 히 식스는 '초원의 평온과 적막'을 유토피아/디스토피아적으로 그렸다고나 할까).
조용남의 소울에 대한 취향은 여전해서 많은 소울 곡들이 커버되어 있는데 "Dance to the Music" "Sing a Simple Song" 같이 시끌벅적하고 경쾌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의 소울, "I'll Be There" 같이 듣기 편한 부드러운 알앤비를 넘나든다.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I've Been Loving You Too Long"의 당시 일인자는 느리면서도 진한 보컬의 최헌이 아니었을까. "Sing a Simple Song" 같은 곡에서는 돌아가면서 부르면서 다른 빛깔의 보컬들을 뒤섞어놓는다. 그때까지도 최헌은 그렇게 주도적인 빛깔을 내뿜지는 않지만.
한편 당시 상레모(San Remo) 가요제는 국내의 번안곡 수입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 식스는 이런 동향에도 기민하게 움직인듯 "케세라(Que Sera: 뒷면 해설에는 Que Sara로 표기되어 있음)"라는 칸쪼네까지 포괄시켰는데, 이 노래는 1971년 상레모 가요제에서 이탈리아의 보컬 그룹(Ricchi e Poveri)이나 호세 펠리치아노가 출전했던 곡으로 국내에서도 트윈폴리오 등 많이 불렸다. 한때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오도되기도 했지만 원래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바다를 건너면서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인데, 히 식스 번안곡(조용호 번안)은 이런 원곡의 느낌이 살려진듯 고향을 떠나는 심경이 잘 담겨있다.
포크 록에 대한 히 식스적 해석이 투영된 곡으로는 "스카브로우의 추억"이 있는데, 빠르고 비트 있는 노래로 변화시키고 전주나 간주에는 현란한 혹은 사이키델릭한(?) 플룻과 오르간 및 와와 기타를, 후주에는 베이스와 드럼의 재즈적(?) 터치도 가미시켰다. "Here Comes the Sun"은 (포크 록 스타일에 가까운) 생톤의 여린 아르페지오 기타 및 이영덕의 맑은 보컬이 조화를 이룬다. 흥미롭게도 이전의 비틀스 커버곡 중에 'sun'이 들어간 노래인 "I Will Follow The Sun"이 상기된다.
이런 여러 스타일이 '다양함'인지 '산만함'인지 평가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자유겠지만,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통해 주류와 절연하는 가사, 음반을 통제하는 뮤지션으로서의 자의식, 무엇보다도 '현충일을 제외하고 364일 동안 공연했다'는 '라이브 밴드'로서 히 식스의 진가가 여실히 드러난 음반이 아닐까. 마이크를 앞에 한두 대 놓고 다같이 합주하는 원테이크로 레코딩하곤 했다는 당시의 제작 환경(일명 '스튜디오 라이브')을 잘 활용한 것이다. 특히 몇몇 곡의 경우는 아주 '생생하다.' 그들은 이렇게 인사한다. "히 식스를 찾아주신...여러분 ... 같이 즐거웁게 ... 춤 한번 추시겠어요?("Dance To The Music")" 20021002
수록곡 Side A 1. 물새의 노래 2. 케사라(Que Sara) 3. 스카브로우의 추억(Scaborough's Fair) 4. Dance To The Music 5. I'll Be There
Side B 1. 초원의 빛 2. I've Been Loving You Too Long 3. Stand 4. Here Comes the Sun 5. Sing a Simple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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