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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vol.4/no.22 [20021116]


김정호
김정호 Gold Two

애플/유니버설(K Apple 813), 1975

신현준 homey@orgio.net | contents planner

'포크'도 '가요'도 아니었던 새로운 양식의 성숙

김정호는 송창식과 더불어 1974-5년 경 '포크'를 대중음악의 주류로 확고하게 끌어올린 주역이다. 그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편지"를 제외한 어니언스의 히트곡들의 '진짜' 작곡자인 것이 알려지면서부터라는 사실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여기에 어떤 '전략'이 숨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이름 모를 소녀"과 이 곡이 그의 데뷔 독집 음반 [김정호 골드](1974)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는 점도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렇지만 1집 음반의 수록곡 대부분이 어니언스를 통해 '검증된' 곡이었던 반면 2집 음반인 이 앨범은 그의 '신곡'을 많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흥미롭다.

음반에는 "이름 모를 소녀"와 더불어 그의 대표곡의 하나인 "하얀 나비"가 뒷면 세 번째 트랙에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후미진' 곳에 위치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Young Family Series 1](K-Apple 798, 1974.11.4)미리 수록되어 이미 히트했기 때문일 것이다. 침소봉대가 되는 감이 없지 않지만 오랫동안 사랑받는 곡이니만큼 장황하게 설명해 보자. 못갖춘 마디로 시작하는 현악기가 전주를 만들어내고 노래가 나온 뒤에는 대선율을 만들어내는 점은 '김정호 작곡, 안건마 편곡'이라는 정보가 적힌 곡의 일반적 특징이다. 하지만 청자의 취향에 따라서는 '현악기를 남용한다'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 1집 수록곡들(특히 "이름 모를 소녀")에 비하면 절제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노래 뒷부분에는 현혜미의 백킹 보컬까지 더해져서 선율이 여러 층을 이루면서 고운 윤곽을 그린다. 이 곡만 그런 건 아니지만 왠지 '한국적'으로 들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5음계로 이루어진 멜로디가 중요한 이유겠지만 이 곡의 경우 리듬의 운용도 이유의 하나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드럼 연주는 트로트(?)와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베이스 연주는 컨트리의 베이스(이른바 '투 비트 베이스')와 유사한 패턴을 보이지만 '단지 유사할 뿐'이고 게다가 느낌은 트로트나 컨트리(한미 양국의 뽕짝?)와는 딴판이다. 림을 가격하는 백비트가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러밍이 '셔플 리듬'이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생각해 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러다가 고음의 보컬이 나오는 절정부("때가 되면 다시 필 걸...")의 네 마디가 되면 왼쪽 스피커에서는 스네어 드럼의 가죽부분을 때리는 강한 백비트가 나오고 (하이 해트 심벌이 아니라) 라이드 심벌이 12비트로, 즉 셋잇단음표를 네 번 울려댄다. 즉, 4/4박자의 곡이지만 4분 음표 하나가 셋으로 쪼개져 있다. 조금 논리를 갖춰서 해야 될 이야기지만, 이런 점이 김정호의 '포크'가 '한국적'으로 들리는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하얀 나비"가 사랑받는 또하나의 이유는 김정호의 작곡 치고는 드물게 A-A-B-C의 단순한 형식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즉, 김정호의 곡들 가운데 따라 부르기가 가장 쉬운 곡이다. 이런 점에서 앞면 네 번째 트랙에 수록된 "푸른 하늘 아래로"가 이 앨범의 또하나의 대표곡이라는 점은 이상하지 않다(이 곡 역시 앞서 말한 [Young Family Series 1]에 수록되어 있다). 뿜뿜거리는 관악기(트롬본)와 잔잔한 오르간이 이끄는 이 곡은 김정호의 곡 답지 않게 밝고 힘있는 곡이다. 이 곡 역시 템포와 패턴은 다르지만 리듬 파트의 운용이 "하얀 나비"와 유사하다. 컨트리 스타일의 바이올린 전주를 동반한 "기다림"이나 처절하게 구슬픈 현악으로 시작하는 "하얀 천사의 노래" 역시 유심히 들으면 베이스와 드럼의 탄력적인 운용을 통해 '처지는 느낌'을 저지하는 곡들이다. (개인적 소감일 뿐이지만 "기다림"은 "노란 샤쓰의 사나이" 이후 컨트리 스타일의 현악 주법을 대중음악에 '제대로' 응용한 곡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1집의 "외기러기"와 더불어).

다른 한편 "나를 두고", "꽃잎", "얼굴" 등은 느린 템포의 '발라드'이고, 창(唱)의 영향이 강한 보컬로 절창하는 절정부가 특히 중요한 곡들이다. 이 경우도 자칫하면 어울리기 힘든 관현악의 오케스트레이션과 드럼/베이스/기타의 리듬이 보컬의 진행에 맞추어 강약과 높낮이를 조절해 내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예는 매우 많지만 "꽃잎"에서는 절정부에서 베이스의 진행이 활발해지고, "얼굴"의 절정부에서는 16비트의 라이드 심벌이 등장하는 점만 지적해 둔다. 또한 "나를 두고"와 "얼굴"에서 등장하는 전기 기타는 플랜저라는 신종 이펙트를 통해 '이런 스타일의 음악에 어울리는 톤'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를 두고"에 등장하는 플루트 연주에서 당시 포크 음반의 편곡을 많이 맡은 또 한명의 쟁쟁한 젊은 음악인과의 '라이벌 의식(?)'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선의의 경쟁'이었을 것이다)

B면의 마지막 세 곡은 '김정호 작곡, 안건마 편곡'이 아니다. 그 가운데 두 곡은 김희갑의 기성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눈동자"는 김희갑 특유의 관현악으로 편곡되어 있지만 이승재가 부른 원곡에 비해 '유행가 창법'이 완화되어 있고, "달맞이꽃"은 김희갑의 섬세한 클래식 기타 연주와 김정호의 구슬픈 보컬이 오보에를 비롯한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곡 "새벽길"은 김민기가 만들고 양희은이 녹음했던 곡이 재즈풍으로 편곡되어 있다. 왜 편곡자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지금 와서 드는 의문은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왜 여전히 '포크'라고 불렀느냐는 점이다. '포크냐, 가요냐'라는 이분법 때문이었을까. 당시 '가요'란 트로트를 의미했으니까. 간혹 김정호의 음반은 '포크를 가요화(化)시킨'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통기타 순수주의'로부터 나오는 이런 평가는 '폄하'에 가깝다. 그렇지만 '포크와 가요의 이분법'을 허물고 새로운 대중음악의 양식을 형성한 것으로, 즉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었을까.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김정호는 오래 전에 망자가 되었으므로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람만이 아는' 유형에 속할 것이다. 20021119

P.S.
1. 김정호가 작곡한 곡의 형식은 'A-B-C-D'으로 불러야 할지, '기-승-전-결'로 불러야 할지, 'verse1 - verse 2 - pre-chorus - chorus'로 불러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꽤 복잡한 형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 또한 곡을 시작하는 화성이 I도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점도 특이하다. 예를 들고 "나를 두고"는 ii도 화성으로 시작하고(G 장조이므로 Am), "기다림"은 IV도 화성으로 시작한다(C장조이므로 F).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성'이 있는 이유는 아직 미스테리다.

2. 김정호의 창법과 작곡은 1980년대 이후 김두수에게 가장 잘 계승되어 보인다. 특히 "꽃잎"에서 어쿠스틱 기타 전주는 김두수의 여러 곡에서 '업데이트'된 형태로 남아 있다. 실제로 김두수는 1980년대 초 김정호가 운영하던 무교동의 생음악 살롱 [꽃잎]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경력을 시작했다.

수록곡
Side A
1. 나를 두고
2. 꽃잎
3. 하얀 천사의 노래
4. 푸른 하늘 아래로
5. 기다림

Side B
1. 얼굴
2. 하얀 나비
3. 눈동자
4. 달맞이꽃
5. 새벽길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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