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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사랑아

하염없는 이 슬픔,
차 창가에 비 내리네

아름답던 네 모습 떠나고 없네
둘이서 앉았던 구석진 그 자리엔

안개처럼 뽀얀 담배연기만



왠일일까 (왠일일까),

왠일일까 (왠일일까)



너와 나 그 옛날 그 맹세

시든 꽃처럼 서글픔만 남았네
가고 없는 서글픈 우리의 사랑아



왠일일까 (왠일일까),

왠일일까 (왠일일까)



너와 나 그 옛날 그 맹세

시든 꽃처럼 서글픔만 남았네

가고 없는 서글픈 우리의 사랑아

사랑아, 사랑아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
이장희
그건 너!

성음(SEL 20 0015), 19730620

이용우 garuda_in_thom@hotmail.com | editor
이장희와 동방의 빛, 포크에 플러그를 꽂다

이장희를 음치 가수로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당대(當代), 그러니까 이장희가 데뷔하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970년대의 얘기다. 멀리 트로트 가수나 그룹 사운드의 싱어와 비교할 필요 없이, 송창식이나 조영남 같은 성량이 풍부한 가수, 반대로 김세환이나 윤형주처럼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가수와 단순 비교한 결과였을 듯하다. 되는대로 부르는 듯한 이장희의 노래는 성의 없게 들리고 상대적으로 음정이나 박자의 어긋남이 귀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그런 솔직한 창법이야말로 이장희를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은 매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적 계기가 된 음반이 3집 [그건 너!]이다.

[그건 너!]는 1973년 발표된 가요음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판매량을 기록한 '대박' 음반이다. 1972년 데뷔 앨범 [영 페스티벌 Vol. 1(이장희)](유니버어살), 2집 [영 페스티벌 Vol. 4(이장희 2집)](유니버어살)로 서서히 주가를 끌어올리던 이장희는 3집의 타이틀 곡인 "그건 너"의 대 히트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 같은 입말(口語)에 가까운 표현, "전화를 걸려고 동전 바꿨네 종일토록 번호판과 씨름했었네" 같은 상큼한 표현, 그리고 "그건 너"라는 직설적인 화법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고, 이장희의 털털한 보컬은 그 가사들을 실어 나르는데 적격이었다.

그게 다였을까? [그건 너!]를 단지 이장희의 히트 음반으로만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음반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이 음반은 이장희의 세 번째 솔로 앨범인 동시에 (후에 '동방의 빛'이란 이름을 갖게 되는) 밴드의 멤버십을 실질적으로 가지고 만든 첫 음반이기도 하다. 동방의 빛이란 밴드 이름은 음반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음반의 뒤 표지에 적혀 있는 연주자 명단은 이들의 존재를 알려준다. 강근식(일렉트릭 기타), 이장희(보컬, 리듬 기타), 조원익(조원익), 배수연(드럼)이 그들이다.

동방의 빛이란 팀워크가 아니었다면, 이 음반의 성공은 절반만 가능했을 것이다. 하나의 동기(두 마디)에서 한 마디 노래하고 한 마디 쉬는 형식을 애용하는 이장희의 자작곡들은 기타, 베이스, 드럼 등 다른 파트의 '반주' 이상의 '합주'로 어우러지면서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건 너"가 대 히트했던 요인을 분석하면서 출중한 악기 연주와 편곡을 빠뜨려선 곤란하다. 배수연의 드럼은 그리 나서지는 않지만 세 번째 박자에 액센트를 주며 특이한 리듬감을 주다가(버스 부분) 백비트로 변화하고(코러스 부분), 대신 조원익의 베이스 기타는 저음부를 가로지르며 종횡무진 누빈다. 물론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강근식의 기타이다. 버스 부분에서 잔잔한 물결이 파문을 그리듯 퍼져나가는 연주를 펼치다가, 그 유명한 코러스 부분에서 이장희의 노래와 '매기고 받는데' 이는 그 부분을 '핏대 세우며 "그건 너~" 하고 싱얼롱'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다른 곡들도 대부분 기타, 베이스, 드럼만으로 충분하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연주와 편곡이 잘 짜여져 있다. 1집에 실려 인기를 모은 "그애와 나랑은"과 "친구여", 그리고 2집에 실렸던 "애인"과 "비의 나그네"의 재녹음 버전은 원래 버전에 있던 오르간 연주를 과감히 생략하는 대신 '일렉트릭하지만 명징한'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강근식의 기타는 "그애와 나랑은"의 버스 부분에선 마디마다 트릴 주법(해머링과 풀링을 빠르게 반복하면서 원음과 도움음을 빠르고 연속적으로 반복하는 주법)으로, "친구여"와 "그애와 나랑은"의 코러스 부분에서는 클린 톤의 하모니를 이루며 미끄러지듯 연주하면서, 빈 사운드를 감싸는 것 이상으로 곡을 주도하고 있다. "애인"과 "비의 나그네"는 원래 버전이 어쿠스틱 기타 위주인 데 비해 새 버전은 일렉트릭한 연주로 탈바꿈했다.

전체적으로 1집에 비하면 오르간이 빠져서 간결함이, 2집에 비하면 어쿠스틱 기타가 한발 물러나 있어 일렉트릭함이 돋보인다. 'All These Songs Are Came From A Room'이란 표지에 적힌 문구와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사운드이다. 방(구석? 화실로 추정되는 실내 공간)에서 만들어진 곡들치고는 뜻밖의 일렉트릭 사운드라는 의미다.

그런데 사실상 이 음반은 이장희와 강근식의 이중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음(知音) 사이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강근식은 보컬이 나오는 와중에도 부단히 주요 리프나 장식적인 음을 연주하고, 코러스 부분에서는 어김없이 보컬과 매기고 받는다. 이장희의 보컬은 일반적인 포크 가수처럼 보컬이 명징하지 않지만, 강근식의 기타는 딜레이와 벤딩 등 다양한 이펙트와 주법을 활용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클린 톤의 분명한 느낌을 준다. 그의 기타 연주는 일렉트릭하지만, 로킹하지는 않다. 가령 잔잔하고 부드러운 "촛불을 켜세요"는 아기자기하고 이국적인 기타 연주로 맛깔스러운 느낌마저 준다.

[그건 너!]를 계기로 이장희와 동방의 빛은 하나의 음악 어법을 정립하게 된다. 그걸 단순히 포크 록으로 지칭하는 것은 간편하긴 하지만 일면적이다. 이 음반에서 들려주듯 이들은 쳇 앳킨스(Chet Atkins) 풍의 컨트리 "자정이 훨씬 넘었네"부터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영향이 느껴지는 "당신은 누군가요", "누구일까"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지 않은가. 이 음반은 이장희 개인에겐 스타의 지위를 안겨주었으며, 동방의 빛이 당대의 포크 걸작들의 숨은 조연을 맡게 되리라는 걸 예견케 했다. 달리 보면, 이 음반은 포크의 다양한 진화와 변이, 그 중에서 '플러그를 꽂은 포크'의 한 가능성을 남겼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단촐하게 노래하던 포크는 이제 대중화와 함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20021126

<부연>
1. 이장희는 1973년 1월 1일부터 동아방송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0시의 다이얼]을 진행했다. [0시의 다이얼]과 3집 [그건 너!]는 모두 인기가 높았다. 선후 관계를 떠나 이런 게 시너지 효과가 아니겠는가.
2. 동방의 빛의 멤버들은 이장희를 제외하곤 원래 성음레코드의 세션 맨들이었다. 이장희와 강근식은 이미 1968년부터 절친한 친구사이였고, 조원익, 배수연 등은 레코딩 세션 맨으로 활동하면서 호흡을 맞췄다. 동방의 빛은 1973년 봄, 강근식의 군 제대와 이장희의 음반 녹음을 계기로 이장희, 강근식, 조원익, 배수연이 의기투합하여 결성되었다(이후 배수연 대신 유영수가 들어오고 건반의 이호준도 새로이 가세하는 멤버 변동을 겪는다). 이들은 4월과 5월, 송창식 등의 음반 녹음에 참여하면서 최고의 레코딩 세션으로 이름을 날렸다. 해체 이후에는 각각 영화음악, CM송, 레코딩 세션 등의 분야에서 명성을 이어나갔다.


수록곡
Side A
1. 그건 너
2. 촛불을 켜세요
3. 그 애와 나랑은
4. 당신은 누군가요
5. 친구여
Side B
1. 누구일까
2. 자정이 훨씬 넘었네
3. 애인
4. 비의 나그네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
어니언스
작은 새/초저녁별(안건마 편곡집)

애플/유니버살(K APPLE 785), 1974.3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 | contributor
대중 매체로 파고든 청년 문화의 기수

어니언스를 가리켜 '한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이라고 한다면 무례한, 혹은 무리한 비유일까. 팝/가요적인 호소력을 강하게 띤 포크 음악으로 커다란 대중적 인기를 누린 남성 듀오라는 면에서 이 둘은 각기 자기 나라의 음악사에서 비슷하게 자리매김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영향은 어니언스가 후속 음반에서 "Sound of Silence"을 커버하지 않았더라도 알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물론 그런 영향을 받은 남성 듀오로는 트윈 폴리오와 쉐그린이 어니언스를 앞선다는 점, 그리고 어니언스가 실은 혼성 트리오로 시작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다소 정밀함이 결여된 비유이긴 하지만.

그렇게 운을 떼고 보니, 한국의 포크 및 대중음악계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영향은 다른 어떤 미국 포크 음악인들보다도 컸던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 까닭은 한국에서 유독 남성 포크/팝 듀오가 번성했다는 데 있는데, 앞서 말한 세 듀오 이외에도 동시대의 투 코리언스, 금과 은(투 에이스), 4월과 5월, 하사와 병장, 좀 더 나아가자면 따로또같이, 해바라기(이주호, 유익종), 유심초, 수와 진 등등 숫자로만 따져도 무시 못할 정도다. 미국에서 남성 듀오의 전통이 컨트리로부터 시작해서 에벌리 브라더스(The Everly Brothers)를 거쳐 사이먼 앤 가펑클에 이른 뒤 차츰 퇴조해가는 모습을 보인 데 비하면 괄목할 만한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고운 하모니를 선보이는 남성 듀오가 오늘날 미국에 등장한다면 동성애 커플이 아니냐는 구설수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되리라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어니언스를 다시 들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이들이 1970년대 후반 이래로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등장한 '아마추어 대학생 사운드'를 많은 부분 예시한다는 점인데, "사랑의 진실"에서 현악과 기타에 이어 '파파파파, 파파파파'하는 스캣이 드럼에 실려 들어가는 전주부가 전형적으로 그렇다. 그룹 사운드를 제외한 참가곡 대부분이 MBC 오케스트라에 의해 편곡 및 연주된 대학 가요제의 포맷을 고려한다면, '경음악' 악단장으로 잔뼈가 굵은 안건마가 손댄 어니언스의 음악이 대학가요제 사운드의 효시처럼 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편곡도 편곡이지만 민요적인 선율과 감성을 포크에 도입함으로써 외래 음악인 포크를 문자 그대로 민속(folk) 음악에 접근시킨 김정호의 작곡은, "작은 새"와 "외기러기"의 히트로 대중적 호소력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이후 아마추어 대학생 가수들의 적극적인 민요 수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정작 어니언스 본인들, 즉 이수영과 임창제는 별로 한 일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김정호의 곡들이 버젓이 임창제의 이름을 달고 나온 게 뒤늦게 폭로된 '사건' 또한 그런 인상을 더 강하게 했지만, 그렇다고 어니언스가 가짜 싱어-송라이터 듀오였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대표하는 불후의 히트곡 "편지"는 임창제의 작품이고, 이수영이 만든 "초저녁 별"과 "며느리" 같은 곡은 김정호-안건마 사운드가 지배하는 앨범의 전반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제주 지방 민요를 현대화한 "며느리"는 일상의 정서를 담은 가사가 I-IV-I-V의 주요 3 화음을 오가는 단순소박한 패턴을 반복하는 통기타 스트로크와 결합해서 일종의 '새로운 토속성'을 만들어낸다. 노래하기에 관해서라면, 약간 가냘픈 듯한 목소리로 떨기(vibration)나 '꺾기' 등 대중 가요식 창법에 능한 임창제와, 노래의 풍에 따라 때론 구수하게, 때론 감미롭게 들리는 배음(倍音)의 소유자인 이수영의 균형과 조화는 왜 어니언스가 그토록 대중에게 사랑받았던가를 설명해주는 주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특히 청소년층의 열광은 미남형인 이수영에게만 집중적으로 쏟아져, 임창제는 그 와중에 얼마간 소외된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인기의 여세를 몰아 영화에까지 출연한 이수영은 이후 청소년 아이돌 가수들이 잇달아 영화계로 진출해 청춘/멜로물을 만드는 선례를 남기게 되었고, 어니언스의 균형이 깨질까봐 두려워한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인해 원래 대본에는 없던 역을 만들어서 임창제를 같이 출연시켰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하지만 임창제는 음악적 재능 외에도 능수능란한 재담으로 공연과 방송출연을 통해 나름대로의 입지를 쌓았고, 이수영이 대중음악계를 떠난 뒤에도 남아서 주변적으로나마 활동을 지속해왔는데, 이러한 이들의 행적 또한 송골매의 구창모-배철수 짝에 의해 다시금 반복된 선례가 된 셈이다.

지금은 사라진 동양방송 TBC의 간판 쇼 프로그램 [쇼쇼쇼]를 통해 1972년 데뷔한 이래, 어니언스는 막 꽃피기 시작한 청년 문화가 TV, 라디오, 영화 등의 대중 매체로 유입되는 데 첨병 노릇을 단단히 한 듯하다. 비록 1집의 성공이 2집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임창제가 대마초 파동에 연루됨으로 말미암아 어니언스의 폭발적 인기도 단명하고 말았지만, 아직껏 노래방의 애창곡으로 꼽히는 '편지'를 빼놓는다 하더라도 이들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유산은 대학가요제를 비롯하여 대중 매체에 의해 어느 정도 정형화된 이후의 대학생-청년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21127


수록곡
Side A
1. 작은 새
2. 사랑의 진실
3. 저별과 달을
4. 편지
5. 외기러기

Side B
1. 초저녁 별
2. 뭐나고 쓰나
3. 외길
4. 어떤 일
5. 내 친구여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
album review
vol.4/no.20 [20021016]


양희은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2집

유니버어살(KLS 40), 1972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 | contributor
서정성과 민중성의 아름다운 공존

난장이의 딸은 팬지꽃이 피어 있는 두어 뼘 꽃밭가에서 줄 끊어진 기타를 쳤다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낙원구 행복동이란 반어적인 이름이 붙은 무허가 철거촌 뒷마당에서 줄 끊긴 기타를 치던 그녀의 소설 속 이름은 영희였지만, 그 어렴풋한 가상의 풍경에 늘 겹쳐 떠올리게 되는 건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젊은 양희은의 모습이다. '고운 노래 모음'이라는 제목을 달고 양희은의 첫 두 음반이 나온 뒤로부터 정확히 인구학적 의미에서의 한 세대가 지나갔다. 즉, 당시 그녀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이들은 이제 노년의 문턱을 바라보는 처지가 되었고, 그 무렵 비로소 태어난 이들은 이제 청년기의 끄트머리에 붙어서 있다. 먼 옛날 같은 이야기지만, 그 시기를 '경제 기적의 신화' 따위의 이름으로 미화하며 죽은 독재자의 망령을 불러내려는 굿거리가 판치는 현실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새삼 절실한 것으로 만든다.

일천구백칠십년대. 조세희는 소설에서 사이먼과 가펑클의 '침묵은 암세포처럼 번진다'("Sound of Silence")는 가사가 불온하게 들리던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아침 이슬")나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작은 연못") 같은 은유와 우의(寓意)는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되었고, 따라서 김민기가 만들고 양희은이 불렀던 고운 노래들은 본의든 아니든 1970년대 저항 가요의 대명사가 되었다. 곱고 아름다운 것들이 빈곤과 억압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지 않았던 '그 시절'의 미학은, 다분히 도회적이고 엘리트적인 형식과 민중적인 내용이 어울리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문학에서 조세희의 '난장이' 연작이 파격적인 서사구조와 문체 실험을 통해 자본주의 산업화의 어두운 면에 대한 사실주의적 고발을 혁신했다면, 이미 그보다 몇 년 앞서 대중음악에서는 미국 모던 포크의 영향을 받은 일단의 통기타 가수들이 현실의 문제들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아침 이슬"을 포함한 세 곡 외에 나머지는 모두 번안곡으로 채워진 양희은의 1971년 첫 음반이 보여주듯, 이들 대학가 출신 포크 가수들은 적어도 초창기에는 '외국 문물'의 수입과 모방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채 1년도 못되어 내놓은 '고운 노래 모음 2집'에서는 거꾸로 창작이 아닌 곡이 "아름다운 것들"과 "저 부는 바람", 그리고 고전 동요 "등대지기"의 셋에 그친 걸 보면, 모방에서 창작으로의 진화는 꽤나 신속하게 이루어진 편이다. 그 과정은 또한 느슨한 의미에서 일종의 집단 창작이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김민기-양희은의 파트너쉽을 보완해 온 '얼굴없는' 작곡가 김광희의 기여는 꾸준하고, 조영남, 이수만, 그리고 이후 코미디언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된 고영수의 우정출연("인형")은 당시 청년문화의 생기어린 단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재즈 음악인들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60년대 후반부터 재즈 악단을 이끌었던 정성조는 플룻,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4인조 편성으로 이 음반과 그보다 약간 앞선 김민기의 데뷔 음반에 반주를 제공했다. "그 사이"와 같은 곡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이들의 기여는 '바람'의 심상을 통해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표현하고자 했던 포크의 감수성을 쿨(cool) 재즈의 어법과 절묘하게 결합시킨 데 있다. '호롱불'이나 '오두막' 등의 시골 풍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그 사이"는 다른 아무런 보탬 없이 통기타 반주만으로 부른다면 흔한 캠프 송에 지나지 않을 것 같지만, 플룻의 유려한 선율이 끼여들기 시작할 무렵이면 음악은 이미 갈댓잎을 떠난 바람처럼 머물지 않고 그저 '열릴 듯 비껴가는' 사이에 있을 따름이다.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1977)의 전편에 해당할 법한 "서울로 가는 길"은, 병든 노부모를 시골에 버려두고 돈 벌러 서울로 떠나는 딸의 심경을 그린 가사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차라리 한(恨)어린 민요풍의 접근이 적절할 것 같지만, 양희은의 청아한 목소리는 정성조 쿼텟의 부유하는 사운드에 기대어 C-G-C-F-G 진행이 내포하는 막연한 희망과 Dm-G-E-Am의 애상 사이를 오간다. 한편 '허무'나 '번민' 따위의 말들과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3박자의 왈츠 리듬을 적절히 활용하는 "아무도 아무데도"는, 당시의 대학생-청년 영화들에서 자주 형상화된 '고뇌하는 젊은 지성'의 속내를 드러낸다.

이 음반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작은 연못"과 "백구"는 정성조 쿼텟의 도움 없이 두 대의 어쿠스틱 기타 합주에 주로 의존하는데, 오른편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것이 김민기의 사운드이고, 왼편은 강근식의 것이다. 정성조와 마찬가지로 재즈 음악인 출신으로 이후 한국 포크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 강근식은, 군 복무중 휴가를 틈타 녹음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기타가 들려주는 유려하고 청명한 톤은 김민기의 절제되고 단아한 연주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데, 특히 "백구"에서 그의 즉흥 연주는 화음이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는 김민기의 술회에도 불구하고 한국 포크의 음악적 성취 중의 하나로 꼽히기에 모자람이 없다.

1970년대 청년문화의 배경에는 도시화, 산업화, 대학생 층의 폭증, 농촌 공동체의 몰락과 대도시 빈민촌의 난립 등이 맞물려 있었다. 그 시기의 초입에 나온 양희은의 노래들은 주위의 혼돈과 비참으로부터 애써 눈을 돌리려 하지 않지만, 그 속에서도 다른 무엇보다 천진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소리로 들린다. 마치 난장이 일가의 꿈이 불도저에 밀려 갈갈이 찢겨나가기 전, 팬지꽃 틈에서 기타를 치던 영희처럼. 이후 수많은 곡절을 거치면서 한국 포크는 거칠게 말해 '서정성'과 '민중성'의 두 요소로 분해되지만, 이 음반은 양자가 공존했던 그리 길지 않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고 있다. 20021015

* 덧붙이는 말: 이 음반에는 두 개의 미스테리가 있다. 먼저, 음반 표지 뒷면에 '"저 부는 바람"과 "등대지기" 그리고 "가난한 마음"을 빼놓은 거의 모든 노래들은 김민기 군이 만든 것입니다'라는 친필 문구가 적혀 있는데, 막상 "가난한 마음"은 이 음반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 곡이 수록된 음반은 양희은의 [고운노래 모음 제3집](유니버살, KLS-71)인데(B면 세 번째 곡) 인데, '제 3집' 음반은 '제 2집' 이후 발표된 '신중현 작품집'에 수록된 곡과 다른 곡들을 뒤섞은 '짬뽕' 음반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음반 표지에 적혀 있는 수록곡의 리스트와 실제 LP의 수록곡 리스트가 다르다는 점이다. 실제로 재생되는 트랙의 순서는 LP '라벨'에 적혀 있다. 이런 점이 음반의 '버전'(초반, 재반...)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혀 둔다.

수록곡
Side A
1. 아름다운 것들
2. 그 사이
3. 서울로 가는 길
4. 인형
5. 저 부는 바람
Side B
1. 새벽길
2. 백구
3. 등대지기
4. 아무도 아무데도
5. 작은 연못
* 음반 표지에 기재된 수록곡 순서
Side A
1. 그 사이
2. 인형
3. 서울로 가는 길
4. 저 부는 바람
5. 작은 연못
Side B
1. 백구
2. 새벽길
3. 등대지기
4. 아름다운 것들
5. 아무도 아무데도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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