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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vol.4/no.22 [20021116]


영화음악
별들의 고향

성음(SEL 20 0029), 1974

최지선 fust@nownuri.net | editor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사운드트랙음반의 정수

검열이라는 정치적 억압 장치와 석유파동이라는 경제적 불황이 중첩된 암흑기에도 불구하고(아니, 그 덕에. 이것이 영화의 흥행 법칙 아니던가) 1970년대 중반은 흥행 영화들이 속속 태동된 시기였다. 이는 관객동원 차원 이상의 신조류를 배태한 결과물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과 [어제 내린 비](1975),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 [겨울여자](1977)는 1970년대 한국 영화계에서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낸 영화일 것이다. 신파적 멜로 드라마의 한 전형(혹은 변형)이 일명 '호스티스 영화'를 통해 만들어졌고, 당시 청년들의 막연한 좌절감, 패배감이 은유적으로 혹은 굴절적으로 재현된 '청년 영화'가 탄생한다(물론 '청년 영화'의 대표작으로는 [바보들의 행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장호의 성공적 데뷔작인 [별들의 고향]은 바로 이런 영화들의 신호탄이 된다. 경아(안인숙 분)라는 비련의 여성을 통해 드러난 것이, 가학적인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말하든, 비정상적으로 급속하게 전개된 도시화, 산업화의 산물이라고 말하든 간에... 영화의 흥행이 작품성을 논하는 지표가 될 수는 없지만 당시 46만이라는 관객 동원은 무시할 수 없는 지표가 된다(이 기록은 후일 [겨울 여자]에 의해 갱신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영화 속에서 '화면 속의 화면(frame in frame)'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 장치는 거울이나 유리창에 쓸쓸하고 초라한 모습을 비추는 효과(특히 첫 남자(하용수 분)와의 비극 끝에 결혼한 남자(윤일봉)와의 침실은 거울로 가득하다)와 더불어, 창틀, 가구, 벽을 통한 (특히 베드씬) 엿보기 효과를 복류시킨다.

또 하나의 영화적 장치는 음악이다.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기능을 하는데 비애의 분위기와 음울한 분위기가 음악을 통해 부가된다. 이런 덕분에 영화뿐 아니라 음반도 베스트셀링을 기록한다(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1974년 당시 한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10만장이라는 수치도 언급된 바 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은 슬로 템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다.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와, 여러 번 입힌 흔적이 역력한, 영롱하게 정제된 기타 사운드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아련한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가 간간이 섞이면서 영화 속의 슬픔이 반향한다. 이런 애조는 연주곡 버전에서 황천수(강근식의 회고에 의하면 나이트클럽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색소폰의 구슬픈 선율에 의해 증가된다. 문호(신성일 분)와 경아가 만날 때 술집에서 흐르던 곡이다. 서정적인 클린 톤 기타와 다소 다듬어지지 않는 보컬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런 스타일은 강근식을 비롯한 동방의 빛 편곡의 어법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외에 이장희의 보컬이 들어간 곡으로 "한잔의 추억"이 있다. 퐁퐁거리는 가볍고 부유하는 느낌을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가 냈고 보컬과 같은 선율을 신시사이저가 따라간다. 특히 후렴부에서 기타는 보컬과는 다른 식으로 기타 자신만의 고유한 간단한 선율이 생성하는데 이 역시 강근식의 전매특허라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외에 서정적인 트랙 "이젠 잊기로 해요"와, 3박자 월츠풍 배경음악에 "오랜만에 누워보는군"이라는 유명한 대사가 '살떨리는' 목소리에 실린 다이얼로그 트랙(아마 당시에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까지가 '목소리'가 들어간 곡이다.

그러나 이 앨범의 백미는 연주곡들에 있다. 우선 "별들의 고향"이라는 대제목 아래 A, B, C 연작으로 구성된 3부작이 눈에 띈다. 첫부분인 "별들의 고향 A - Prologue"는 바람(과 비슷한) 소리로 시작해 황량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곧 질주하는 듯한 드럼이 깔리며 두 코드로 이루어진 피아노가 입혀지는데, 거칠고 굵은 선의 퍼즈 톤 기타 리프(C 파트인 "한 소녀가 울고 있네"의 선율)와 연결된다. 이후 계속 변주되던 이 곡은 중반부 이후 빠른 템포로 변하며 신경질적인 기타와 플루트(크레딧에는 없지만 조원익이 연주)가 조우한다. "별들의 고향 B - 사랑의 테마"는, 오프닝 씬에서 문호가 죽은 경아를 애도하며 회고할 때 깔리는데, 말 그대로 쓸쓸하고 애잔한 애가다. "별들의 고향 C - 한 소녀가 울고 있네"는 연주곡이 아닌 이장희가 노래하는 곡인데 전주부터 의미심장하다. 일그러지듯 몰아치며 시작하는 무그가 사뭇 불길하다. 이장희의 '우우'하는 스캣과 함께 조원익 연주의 플루트 소리가 이곡에서도 들리는데, 몽환적이고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주려 했다면 다소 미진한 게 아닐까.

이런 "별들의 고향" 연주곡 연작은 "별들의 고향"이라는 이름을 단 다른 이본(異本)들로 이어진다. 알파벳 이름이 같은 앞서 설명한 곡들과 서로 대응하는 변주곡들이 아닐까 싶지만 서로 다른 이형(異形)의 곡들이다. "별들의 고향(D)"는 네 음을 반복하는 집요한 베이스 기타, 비명과도 같이 순간순간 기괴하게 피어오르는 음향들이, 예쁜 소리와 불협화음을 오가는 피아노와 함께 영화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심정을 담아 낸다. 주인공들의 행복한 꿈과 불행한 현실을 대비라도 하려는 의도였을까.

무엇보다도 이런 연주곡에서 두드러지게 다가오는 것은 은연 중에, 혹은 공공연히 깔리는 재즈적 어프로치일 것이다. "별들의 고향(B)에서, 리프와 같은 역할을 하는 끊어치는 듯 둔탁한 베이스 기타가 하층부를 구성한다면, 유연하고 영롱한 클린 톤 기타나 뮤트론이 입혀진 기타의, 블루스와 재즈적 화성에 입각한 연주가 상층부를 구성한다. 다소 빠른 템포의 "별들의 고향(C)"는 뮤트론을 사용해 스트러밍하는 기타의 코드 진행에 따라 각기 다른 톤의 기타와 뿅뿅거리는 무그 신시사이저가 주 선율을 주고 받는(만나고 헤어지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타 톤의 체인지 등에 의한 이러한 대조적인 전개, 각 악기의 인터플레이는 재즈와 록이 결합한 형식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재즈적 기반은 짧은 소품 "Wedding March"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이처럼 캐치하고 서정적인 대중적 트랙들과 더불어, 다소 과소평가되었지만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트랙이 공존하기 때문에, 영화와는 독자적으로 감상 가능한, 음반 자체만으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 아닐까. 20021208

* 사족 : 이 영화음악 음반의 작품성과 흥행성의 양대 성과에 힘입어 후일에도 커버만 바뀌거나 수록곡이 뒤바뀌기도 하는 등 몇 차례 재발매되었다.

* 연주

동방의 빛: 강근식(기타), 이호준(오르간), 유영수(베이스), 조원익(드럼)

* 영화 크레딧

원작: 최인호
안인숙 신성일 윤일봉 하용수 백일섭
각색: 이희우
촬영: 장석준
녹음: 한양 스튜디오
주제가 작곡 노래: 이장희
음악: 강근식
개봉: 1974년 04월 26일

수록곡
Side A
1.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2. 별들의 고향 A. Prologue
3. 별들의 고향 B. 사랑의 테마
4. 별들의 고향 C. 한 소녀가 울고 있네
5. 이젠 잊기로 해요

Side B
1. 한 잔의 추억
2.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쌕스펀 독주)
3. 별들의 고향(B)
4. Wedding March
5. 별들의 고향(C)
6. 나는 열아홉살이에요
7. 별들의 고향(D)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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