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편에 이어 -
아 아관파천
때는 바야흐로 1896년 2월 11일
대담하게 엄상궁은 고종과 왕세자인 순종을 모시고 덕수궁에서 러시아공사관으로
탈출을 성공한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정-순-헌-철-고-순 그 고종과 순종이다.
엄상궁의 그 탈출 전략은 후대에도 그 치밀함에 혀를 내 두른다고 한다.
그러면 엄상궁이란 누구인가?
1895년 일제에 의하여 명성황후가 살해되는 을미사면이 일어난다.
그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종이 엄상궁을 가까이 하였다. 고종의 승은을 받고
고종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얼굴은 예쁘지 않았고 나이도 고종보다 7살이나 위였다고 하니
그가 갖고 있는 머리와 책략이 고종을 사로잡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고종과 엄상궁이 같이 잔 것을 민비(명성화후)가 알았다고 한다.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명성황후의 입장에서 보면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것도 얼굴도 못 생기고 나이 많이 먹은 여자를 좋아 하다니 질투가 났겠지.
그래서 명성황후는 엄상궁을 궁 밖으로 쫓아낸다.
그 때 엄상궁의 나이 32세
지금은 얼마 되지 않은 나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인생 50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인생의 반 이상을 산 나이다. 지금 나이로 환산 해 보면 40이 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가부장적인 권위가 있었다고는 하나 명성황후가 고종의 총애를 받던 여자를
내 쫓은 것을 보면 여자의 파워도 막강했다고 생각된다.
하여튼
엄상궁은 궁에서 쫓겨나 다시 궁으로 돌아갈 날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1895년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사건이 발생한다.
일제가 남의 나라 왕비를 죽이고 고종과 순종을 볼모로 하여 조선을 지배하려 한다.
엄상궁 입장에서 자신의 최대의 라이벌 그리고 자기가 함부로 못하는
딱 한 사람인 명성황후가 없어졌으니 기다리던 절호의 찬스가 제대로 온 것이다.
자신의 가장 두려운 상대.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딱 한사람 그가 없어졌다.
이 기회를 그냥 지나갈 엄숭궁이 아니다.
엄상궁은 명성황후가 살해된 지 5일만에 입궁을 한다.
도도하게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이제 엄상궁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일본마저도 어떻게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고는 고종 곁에서 다시 고종의 두뇌로 자리를 잡는다.
[구러시아공사관에서 본 공원]
고종으로서는 일제에 의하여 감시 당하고 왕이면서 왕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것
그리고 왕비 시해사건으로 자신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 지도 모른다.
왕으로서의 역할을 못하는 것도 싫었고 더욱이 자기의 부인을 살해한 일본이 더더욱 싫었겠지. 그래서 엄상궁이 덕수궁을 탈출 할 것을 건의를 한다.
그리고 엄상궁을 믿는 고종은 엄상궁에게 맡기기로 하였겠지.
그래서 그 때부터 아관파천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한 여인에 의하여.
궁에 다시 돌아와 첫 번째 프로젝트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켜라.
목숨을 건 대 모험. 일제에 발각되는 날이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고
성공하면 고종의 아내로 들어가 통치의 최고의 위치로 올라
나라의 정치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
물론 자신을 믿는 고종이 뒤에 있다.
그 듬직함.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는 탈출을 위한 모략을 펼친다.
[구러시아공사관 앞 잔디 언덕]
매일 두 개의 가마로 궁을 출입을 한다.
그리고는 궁을 지키는 궁 졸들에게 수고한다고 수고비를 듬뿍듬뿍 준다.
그리고는 가마를 타고 임금님 있는 곳까지 간다.
원래 궁 안에서는 임금님 이외에는 가마를 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궁 안으로 버젓이 가마를 타고 드나드니 사람들의 소문은 어떡했을까?
오만 방자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그 것이 다 술수 였다니
- 3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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