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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화문도

광화문, 돈화문같이

궁의 문에는 자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이 것은 왕이 선정을 베풀어 백성을 감화시키고

제도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흥화문 글씨는 원래 조선 때 명필 이신이 썼는데

그 당시 그 현판의 글씨가 빛을 발휘하여

문 밖이 훤하였다고 하여 야조개대궐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현재 붙어 있는 현판은 그 후에 다시 써진 것이라고.-

들어가니 왼쪽에 구 서울고등학교가 있던 곳이라는 표지가 있다.

예전에 일제에 의하여 조선총독부립중학교가 있었던 자리다.

일제의 자식들을 교육시키던 곳

그리고 해방되고 서울중고등학교가 되고

80년대 후반 강남 서초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역사를 거슬러 올라

광해군 재위 9년 (1617년)

김일룡은 광해군에게 말한다.

전하 새문동에 왕기가 있다 합니다

왕기가 무엇인가?

왕의 기운입니다. 왕이 태어난다는 것이지요

뭐 왕이 태어나.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왕을 내어 놓으셔야 합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곳에 궁을 만들어야 합니다

광해군은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는 경희궁을 짓기 시작한다.



궁에 대한 깊은 애착

궁을 짓는 중간에도 궁에 직접 들려 계속 진척사항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궁의 이름을 경덕궁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그 후 영조가 원종의 시호가 경덕이어 이름을 지금의 이름인

경희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8년이 걸쳐 1623년에 완공 했으나

그 해 3월 12일 인조반정에 의하여 왕위에서 쫓겨난다.

왕기를 막으려다. 경희궁을 완료하자 마자 왕기가 더 강해져

왕에서 내려오다니.

자신의 무덤을 자신이 판 격이다.



경희궁은 정원군(인종)의 사저 이었고

인조는 정원군의 아들이었다고 하니

풍수지리설은 우연의 일치 인지 정확히 맞았다고 할 수 밖에

궁을 만들었어도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그 궁에 그 왕기의 왕인 인조가 살게 될 줄이야.

광해군은 왕기의 왕을 위하여 궁까지 만들어 주는 결과가.

- 3편에 계속 -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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