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Y대 철학과의 학생들인 주요 등장인물들이 군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받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군의관(윤일봉)의 호령에 바보처럼 우물쭈물하는 주인공 병태(윤문섭)와 영철(하재영). 영철은 '병종불합격'되고 병태는 '갑종합격'된다. '갑종합격'을 복창하는 병태의 모습이 클로즈업으로 정지 화면이 되면서 영화의 제목이 떠오른다. 그리고 서서히 나타나는 배경음악. 아, '고래사냥'이 아닌가! 이후로 영화는 주인공 병태와 영철을 중심으로 70년대 대학생활의 여러 단면들을 가벼운 에피소드를 다루듯이 코믹터치로 전개된다. 그러나 장면 전환과 리드미컬한 줄거리의 전개과정은 그야말로 한국영화 같지가 않을 정도다. 신체검사 장면에서 두드러진 대담한 클로즈업, 간간이 보이는 카메라의 180도 회전, 급격한 틸팅과 패닝, 그리고 두드러진 몽타주기법 (주로 두 주인공을 교차시켜 보여줌)과 후반부 병태가 캠퍼스를 걸어가는 데서 나오는 롱 테이크, 여주인공이 빗속에서 카메라를 향해 갑자기 노란 우산을 펴드는 장면, 비칠듯 말듯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남녀 주인공이 샤워하는 장면들은 지금의 눈에도 한국영화치곤 꽤 신선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병태와 영철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뇌와 갈등은 처음부터 동일한 맥락에 위치해 있다. 밝고 순진무구한 듯이 보이는 젊은이다운 행동들의 저변에는 깊은 암울함과 좌절이 깔려 있다. 그것은 중간중간 그들의 자기비하적인 대사와 공권력(경찰로 대표되는), 기성세대(교수로 대표되는)와의 끊임없는 마찰과 갈등을 통해 나타난다. 순진하고 선량하며 기인적인 모습을 보이는 말더듬이 영철. 그는 이상주의자이다. 그의 꿈은 '삼등 완행열차를 타고 동해로 가서 가슴 속에 신화처럼 숨쉬는 고래를 잡아오는 것'이다.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그 가슴 저린 노래가사의 70년대적 원형이 그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동해바다에서 사는 고래'의 의미는 바로 '자유' 그것이 아닌가? 그는 부유한 부모의 품을 뛰쳐나와 집도 없이 살아가면서 '자가용'이라고 부르는 자전거를 늘 타고 다니는, 한마디로 '자유분방이 넘치는' 인간형이다. 아무리 70년대라 하더라도 그와 같은 인간형은 소외의 상징이었나 보다. 사회로부터의 소외. 그에 비하면 병태는 보다 평균적인 '보통 대학생'을 상징한다. 때론 흥분하고 튀다가도 다시 좌절하는, 그러면서도 결국엔 그것을 익히고 적응해나가는. 하길종 감독은 보다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그를 비춰주는 듯 하면서도, 결국은 개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 사회적 틀과 제약에서 방황하다가도 남들과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저변에 깔려있는 좌절과 제약의 실체는 무엇이었던가? 장발 단속, 통행금지, 교통위반에 대한 단속 등으로 간간이 나타나다가 결국에 가서는 '무기한 휴교조치'와 '군입대'로 결말을 짓는 그 거대한 억압의 실체. 그것은 70년대의 청년문화를 거품같은 낭만의 구가로 들뜨게 만들다가도 그들을 다시금 필연적이고 예정된 속박으로 내모는, 권력과 지배의 메카니즘 속으로 무자비하게 편입시켜 버리는 공권력의 극한체, 곧 '유신'이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그런 메커니즘에 종속된 한계로서의 의미를 가지니 그 표현에 대한 벽이 처음부터 명백한 것도 새삼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나타나듯 스스로에 대한 '바보, 쪼다'라는 자기비하와 멸시, '네 꿈은 갈매기의 꿈일 뿐이야'라는 병태의 여자친구 영자(이영옥)의 대사. 그리고 응원전으로 수업이 중도에서 끝나자(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선 학생들의 반일시위로 중단됨) 칠판에 남겨진 'utopia'라는 단어를 지우고, '이상국가'의 글자를 변조해 '사쿠라'로 고치는 병태와, 의도적으로 통금을 무시해 경찰서로 잡혀가서 '나에게 집은 없다'고 진술하는 영철. 그러나 이 장면들의 상징은 "영화의 의무는 부조리와 불합리를 고발하는 것"이며 "한국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가 피고다"라는 죄의식을 지니고 있던 하길종의 저항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찌 생각하면 이 영화 자체가 그런 식으로 시종일관 톡 쏘는 듯한 풍자와 새디즘의 기제인 것이기도 하다. 결말이 예정된 자아도피의 상징이 극에 이른 것은 과대항 술마시기대회 장면이다. 맥주잔에 막걸리(!)를 담아서 열 잔이 넘도록 퍼마신 뒤 출전 선수들이 바늘에다 실을 꿰는 일련의 장면들에선 하길종의 유머감각 절정에 달한다. 어느 영화에서 이렇게 압도적인 '막걸리 마시는 모습'을 볼 것인가! 더구나 그 심사위원이 원작자 최인호와 당대를 주름잡던 코미디언 이기동인 데서는 미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급격하게 파국으로 치닫는다. 감독은 더 지체할 필요가 없다는 듯 예정된 결말을 향해 마무리를 짓는다. 영자는 병태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끝모를 좌절감에 빠진 영철은 자전거를 타고 항상 마음속에 그려오던 동해바다로 간다. 여태까지 심각하지 않게 실실 웃으며 영화를 봐 왔을 관객들을 감독은 일순간에 배신한다. 절벽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영철. 여기서 비로소 송창식의 걸쭉한 목소리로 빠른 템포의 '고래사냥'의 노래가 가사를 달고 흘러나온다. 그리고 마치 '빠삐용(Papillon)'(1973)에서의 스티브 맥퀸처럼 영철은 자전거를 탄 채로 그 광대무변한 푸른 바다 위로 뛰어내린다. 장면은 바뀐다. 머리를 깎은 병태는 입영열차를 타고 있고, 달리는 열차를 쫓아간 영자는 창문 너머로 병태와 키스하다가 헌병의 제지를 받는다. 영화는 끝난다. 무의미한 에피소드적 시퀀스의 연결 같던 중간부분은 훌륭한 수미상관에 의해 연결된다. 신체검사로 시작해서 입영으로 끝나는 영화. 결국 70년대적 대학생활이며 청춘의 낭만이라는 것은 군입대로 상징되는 '권력의 메커니즘으로의 귀속'을 위한 유예, 준비기간일 뿐이 아닌가? 너무나 섬뜩한 구성. 그러나, 영화 중간에 나오는 영자의 대사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얜 못하는 말이 없어. 니가 나하고 결혼해? 넌 나하고 동갑이쟎아. 넌 군대도 갔다와야 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그럼 난 할머니가 돼 있겠다. 우리 엄마가 그러시는데 여자는 잘 팔릴 때 기회를 잡아야 한대. 그리고 철학과잖아. 철학과 나와서 날 어떻게 먹여살리려구 그러니?" "난 꿈이 있어." "꿈? 무슨 꿈? 갈매기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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