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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 해당되는 글 115건

  1. 2005.09.04 방의경 - 불나무 2
  2. 2005.09.04 블루진 - 서글픈 사랑 2
  3. 2005.08.29 겨울여자 - 겨울이야기 1
  4. 2005.08.29 이장희 - 겨울이야기 (시낭송) 4



불나무


산꼭대기 세워진 이 불나무를
밤바람이 찾아와 앗아가려고
타지도 못한 덩어리를 덮어 버리네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 주는가를 음~


덩그러니 꺼져버린 불마음 위에
밤별들이 찾아와 말을 건네어도
대답 대신 울음만이 터져버리네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 주는가를 음~


산 아래 마을에도 어둠은 찾아가고
나돌아 갈 산길에도 어둠은 덮이어
들리는 소리 따라서 나 돌아 가려나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 주는가를 음~


작사,작곡,노래-방의경

통기타소리가요란했던1970년대명동에는전설적인남녀포크가수가있었다.서울미대의김민기와이름도생소한이화여대미대의방의경이주인공이다.방의경이김민기와더불어70년대청년문화를주도했던주역임을아는대중은별로없다.

당시그녀는한대수,김민기,김의철과같은저항적인창작포크곡을불렀던여대생포크가수였다.양희은이부른70년대의대표적인포크곡‘아름다운것들’과김인순,김세화가부른‘하양나비’그리고‘불나무’는대중이기억하는그녀의작품들.하지만“데모하는학생들이즐겨부른다”는이유로그녀의노래들은대부분방송금지의멍에를썼다.상업적인활동과는거리가멀었기에방의경은철저하게베일에가려진신비로운존재로남아있다.

그녀는서울서대문에서부유한사업가집안의1남3녀중막내로태어났다.1949년9월15일생.부친은서울피스톤자동차회사를운영하며한국최초의불자동차를만든발명가방응준씨.어머니는고아원아이들의엄마로불린사회사업가이정순씨다.
서너살때부터유행가를앙증맞게불렀던방의경은아버지회사에서최고스타였다.그리고동네친구들과어울려노는것보다자연을관찰하고주변사람들의삶에관심을보인별난아이였다.창문을열고떨어지는빗소리를한참듣다가바람부는언덕에올라비를맞으며노는막내딸의기이한모습에놀란어머니는서울대병원정신클리닉에데려가기도했다.

미동초등학교에들어가서도공부보다는멍하니창밖을내다보는이상한아이였지만합창단에뽑혀경무대(현청와대)에서노래를부르는재능을보였다.이대부중에진학해서는자연과의대화를글로쓰기시작했다.이대부고1학년부터악보도없이자신의노래를흥얼거리기시작했다.그때그녀는“대포를만들라”는군사정권의제안을거부해탄압받는부친의고통을보면서사회에대한깊은고민에빠졌다.당시접한존바에즈,밥딜런의저항적인포크가락이가슴에와닿았다.고2때오빠의일렉트릭기타를처음만졌고,이불을뒤집어쓰고혼자기타를배웠다.

무대에오른것은1968년이화여대장식미술과에입학하면서부터.교내축제에서노래를부르기시작한방의경은정미조와더불어이대미대의‘노래잘하는쌍두마차’로꼽혔고학생대표로월남위문공연길에오르기도했다.그런어느날이백천과작곡가길옥윤이OB맥주광고CM송을제의해왔다.이장희,김도향과함께방의경은장난삼아1분짜리CM송시험녹음에응했다.

대학시절가장기억에남는것은2학년축제때,작곡가이봉조가반주를맡고조영남이심사위원을했던문리대노래자랑대회.대중적인노래활동을반대했던아버지도이때딸의노래를듣고감격해값비싼야마하기타선물로미안함을씻었다고한다.반주를맡았던이봉조는2옥타브를넘나들며맑은음색으로노래하는방의경의바이브레이션에감탄하며‘하늘에서내려준맑은음성’이라고극찬했다.
이화여대메이데이때의일이다.이봉조는과대표로노래를한방의경을“집까지데려다주겠다”며자신의차에태웠다.도중에“잠깐들렸다가자”고해따라간곳은나이트클럽.그곳에는이봉조악단의전멤버들이기다리고있었다.연예인이되는것은꿈도꾸지않은방의경은정중하게집요한이봉조의픽업제의를거절했다.곡가길옥윤도비슷한사연을갖고있다.그역시곡을쓸때마다“이노래는방의경것”이라며‘제2의패티김’탄생을꿈꿨지만실패했다.길옥윤이그녀의대타로찾은여가수가한때절정의인기를누렸던혜은이라는사실은흥미롭다.


1969년말YWCA멤버였던방의경은이백천이주도한청개구리에자연스럽게참여했다.이시절김민기는가깝게지냈던동료였다.하지만그녀는김민기의‘귀하’라는창작곡을듣고음악적갈등을겪었다.“김민기의어둡고슬픈스타일보다는밝고맑게세상을보게할수있는곡을쓰고싶었다”는방의경은1970년첫창작곡‘겨울’을시작으로30여곡이넘는곡을창작했다.“곡을만들게될때가슴이벌렁벌렁뛰면서전깃줄에감전되듯저절로가사와곡이한꺼번에떠올랐다”
그녀는하루에몇곡을쓸만큼창작의물꼬가트였다.1970년초이백천과길옥윤이주도한‘음악으로세상을정화하는학생들’이라는캠퍼스쿠르세이더(학생십자군)에참여한방의경은김민기,송창식등모든통기타가수들과함께KBSTV에나가한차례합동공연을했다.

그해가을,선데이서울심근수기자의요청으로10여명의대학가노래친구들이대연각호텔옆에새롭게문을연음악감상실‘내쉬빌’에모여단체인터뷰를했다.내쉬빌주인은경기고출신으로정보국장의아들이었던이수일,기업체사장아들김무영(작고),가난했지만음악적기둥이었던김유복등3명이었다.최고의음향시설로한국포크의메카를꿈꿨던이들은상업적인가수들을배제하고진지하게창작곡으로노래하는사람들을우대했던한국포크음악의숨겨진개척자들이다.내쉬빌의역사는이들3인방의요청을받아들인방의경의개인리사이틀무대로시작되었다.
내쉬빌은전국에서무작정상경팀들이모여들며대학가포크싱어송라이터들의둥지로자리잡았다.어느날인기가수조영남이무대에서겠다고했지만거절당했다.내쉬빌은인기를위해활동한대중가수들을거부했던자존심이있었다.방의경은이곳의'두목'으로불리었고'방의경아워'가있는날이면관객을선별해입장시킬만큼특별한대접을받았다.평론가이백천은내쉬빌에대적하기위해음악감상실르시랑스를열었다.그녀는"배고픈음악후배들을위해가끔르시랑스에서개런티를받고노래했다"고기억한다.
이후방의경은청개구리첫공연과김민기의첫개인연주회에찬조출연하며활발한노래활동을펼쳤다.1971년말기독교방송PD김진성과평론가최경식이제작한김민기의독집음반을접한내쉬빌세주인들은충격을받았다.자극을받은이들은내쉬빌의음악을남기기위해음반을제작하자고했다.멤버들을만날때마다각각녹음을했다.당시방의경은기타세션을자청한미8군기타리스트그레그와함께'불나무'를녹음했다.내쉬빌주인들은수원시민회관에서'우리들'이라는3일간의역사적인포크공연을기획했다.방의경은첫날공연에참여했다.
500장한정본으로발매된'아름다운사람아름다운노래-유니버샬,1972'은이때의음원이담겨진소중한음반이다.두차례에걸쳐재발매된이음반은김민기의독집음반과더불어한국포크사에중요한명반으로자리잡고있다.
대학을졸업한방의경은72년4월청개구리에서개인리사이틀을필두로맷돌공연에도특별게스트로몇차례참여했다.이후김진성PD의6개월간설득끝에기독교방송'세븐틴'의DJ로나섰다.이때게스트로나온보성고3학년김의철과운명적만남을가졌다.이후두사람은의남매를맺어인생과음악적인연을지금껏이어오고있다.4개월남짓짧았던DJ생활을그만두고머리를식힐겸시골로여행을다녀오자성음제작소나현구사장이음반제작을청해왔다.

그녀의유일한독집음반<방의경내노래모음-유니버샬,1972년>은포크팬이면누구나가지고싶어하는음반이다.어두운사회현실을너무도맑고아름다운은유적인노랫말로표현한11곡은피끓는젊은영혼들에게위안을안겨주었다.그녀의노래들은단한번일지라도노래를듣고나면헤어나지못하게하는마력을발휘했다.이당시미8군가수장미리는그녀의노래에매료된동생장은아를데리고방의경의집으로찾아가노래를가르쳐달라고했다.그녀의노래'불나무'는암에걸린줄알았던환자에게생명의불씨를지펴준사연으로포크팬들사이엔유명하다.

박정철회현동R레코드사장은"방의경독집음반은6년전음반애호가들사이에존재유무를두고논란이벌어졌던귀한음반"이라고전한다.이음반은현재200만원을호가하며가요음반의여왕으로군림하고있다.하지만방의경은"독집은녹음도마음에들지않고재킷사진도레코드사에서일방적으로선정해큰애착이없다"고밝힌다.독집음반은발매즉시방송과판매금지조치가내려졌다.시중음반가게에진열되어있던그녀의모든음반은칼로그어져폐기되었다."'아름다운것들'을제외하고는거의모든노래가금지됐어요.데모하다죽은학생들의삶이슬퍼지은'하양나비'도그렇고'불나무'도사전에없는말이라며금지곡이되었어요"어느날그녀의이대선배인KBS라디오PD가"펑크낸가수의대타로노래를불러달라"며연락이왔다.성질이난그녀는남산의‘그곳’을은유한'검은산'을불러,그여파로프로그램이통째로심의에걸려취소되는일화를남기기도했다.이후한동안감시의눈길을받았던그녀는홍보협회에취직해우리문화를소개하는'헬로코리아'프로그램제작을맡았다.
1974년엔TBC'5?쳄?다이얼'의DJ를다시맡았지만억울한이유로3개월을넘기지못했다.DJ를그만둔어느날,이대부고동창의형이었던장충동스튜디오엔지니어의도움으로2집녹음에들어갔다.자정을넘어통금이되자문을잠그고비밀리에밤샘녹음을했다.이때녹음한‘하양나비’,‘마른풀’,‘검은산’등30여곡은시대의아픔에분노하고슬픔을어루만진방의경음악의진수였지만마스터음원이분실되어세상빛을보지못했다.

그녀는귀한우리문화를경시하고미국화되어가는사회분위기가싫어1976년결혼후이민을떠났다."미국땅에서문화대결을해보자"는의욕으로떠났지만이민초기뉴욕에서액세서리물품보따리장사를하며숱한고생과좌절을겪었다.1980년초에는LA로건너갔다.세계적인여배우엘리자베스테일러도그녀가만든벨트를차고TV에출연할정도로성공을했지만84년이혼의아픔도겪었다.1994년장신구사업관계로18년만에귀국해후배양희은과함께KBS2TV'심야에의초대'에출연했다.
방의경은2002년초인터넷사이트'윈드버드'에자신의게시판이생겼다는소식에귀를의심했다.그해11월다시귀국한것은잊어버렸던노래운동의불씨를되살리기위함이었다.그녀는자신의노래를잊지못하는많은팬들을확인하곤감동했다.
그녀는꽃피우기도전에가슴속에묻어둔자기음악의완성을위해다시오겠다는약속을남겼다.군사정권에의해생매장되고거세된그녀의모든노래들이온전한모습으로새롭게환생하는그날이기다려진다.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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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사랑아

하염없는 이 슬픔,
차 창가에 비 내리네

아름답던 네 모습 떠나고 없네
둘이서 앉았던 구석진 그 자리엔

안개처럼 뽀얀 담배연기만



왠일일까 (왠일일까),

왠일일까 (왠일일까)



너와 나 그 옛날 그 맹세

시든 꽃처럼 서글픔만 남았네
가고 없는 서글픈 우리의 사랑아



왠일일까 (왠일일까),

왠일일까 (왠일일까)



너와 나 그 옛날 그 맹세

시든 꽃처럼 서글픔만 남았네

가고 없는 서글픈 우리의 사랑아

사랑아, 사랑아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
겨울여자 (1977) * *

감독
김호선

주연
장미희....이화
신성일....허민
김추련....석기









(스포일러가 있지만 신경쓰실 필요없답니다.)

이화와 석기
[겨울여자]의 원작은 조해일이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동명의 신문소설이죠. 당시엔 정말 굉장한 인기를 끌었고 단행본으로 출간된 뒤에는 10만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였답니다. 하지만 지금 과연 이 책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군요. 20여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다들 제목만 기억하고 잊어버린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이 된 듯 해요. 절판되었는지 서점에서도 찾기 힘들고요.

영화도 개봉당시 원작만큼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장군의 아들]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만 해도 단성사 단관 개봉 56만이라는 건 한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이었어요. 이 영화로 장미희는 10여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배우로 영화계를 군림하게 되었고요.

그렇다면 영화는 그 동안 어떻게 나이를 먹었을까요? 얼마 전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봤는데, 결코 나이를 잘 먹었다고 할 수는 없겠더군요. 일부는 어쩔 수 없는 영화 수준의 한계 때문이고 일부는 그 동안 관객들도 많이 자랐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화라는 여자의 삶을 따라갑니다.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어요. 제1부에서 고등학생인 이화는 스토커처럼 뒤를 따라다니며 연애편지를 보내는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구애를 받는데, 그 사람은 근처에 사는 부잣집 아들 요섭이었죠. 둘은 사귀지만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를 견뎌내지 못한 요섭은 이화가 자신을 뿌리치자 그만 자살해버립니다. 제2부에서 대학생이 된 이화는 운동권 학생인 석기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석기를 통해 이화는 자신의 삶의 영역을 조금 넓혀가지만 석기 역시 군대에 간 뒤 교통사고(!)로 죽고 말아요. 제3부에서 이화는 옛날 고등학교 선생님이었고 지금은 대학에 있는 허민을 만나 덜컹거리며 사귀게 됩니다. 둘의 관계가 깊어지자 허민은 결혼을 바라지만 청혼을 거절한 이화는 허민에게 전처와 재회하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의 곁을 떠납니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줄거리인데, 김승옥의 각색은 원작의 마지막 단계를 빼먹은 모양입니다. 영화화되지 않은 4부에서 이화는 괜찮은 성격의 자활원 소장을 하나 만나는 모양인데 끝에 가선 이 남자의 곁도 떠난다는군요.

영화는 성장물처럼 보입니다. 주인공이 각기 다른 성격의 남자들을 한 명씩 거쳐가며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의도겠지요. 적어도 이야기의 논리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그런 논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명목상 주인공은 장미희가 연기하는 이화지만 우린 이 캐릭터에 대해 어떤 친밀감도 느낄 수 없습니다. 내면 묘사가 거의 되어있지 않고 그것도 헐겁기 짝이 없으니 말이에요. 정상적인 영화에서는 이화가 세 남자들과 상호 작용을 거쳐 정신적인 성숙을 이루는 이야기들이 나와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엔 그런 게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화는 정말 텅 빈 캐릭터거든요. 이 한심한 친구는 자기 생각도 없고, 자기 취향도 없고, 그 흔해빠진 여자 친구 하나 없으며, 각 스테이지마다 사귀는 남자 이외에 자기 생활도 없습니다. 다음 스테이지로 건너 뛸 때마다 뭔가 얻은 것 같긴 한데, 그 역시 내면화되어 있지 않아 설득력이 없고요. 특히 3부에서 허선생에게 프리섹스에 대한 설교를 늘어놓을 때는 그 어설픔 때문에 짜증이 팍팍 날 지경이랍니다. 괜찮은 남자를 만났는데도 떠난다는 4부가 있었다면 자기 논리라도 설텐데, 영화에 그런 게 있는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영화가 신경쓰는 것은 각 단계에서 이화를 만나는 세 남자의 고민과 심리묘사입니다. 이들은 모두 70년대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들이고 아주 고약스러운 방식으로 자기합리화가 되어 있지만 관객들은 비교적 쉽게 그들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면 주인공이 이화가 아니라 이화를 만나 어리벙벙해진 세 남자들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제목을 [겨울여자]라고 달아놓은 이 영화가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인 시점에 맞추어져 있다는 증거일 겁니다. 생각해보면 이화는 젖살붙은 20살 여자 모습을 한 편리한 장난감입니다. 가짜 엄마에서부터 섹스 토이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원하는 것들만 뽑아 조립한 인조인간이에요. 이화는 당시 그 시대의 성처녀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뭐 팔딱팔딱 뛰어야 할 캐릭터가 '성처녀'란 말을 들었다면 그 한계는 명명백백하죠. 이 간도 쓸개도 없는 캐릭터는 만나는 남자마다 그냥 '줍니다'. 프리섹스의 개념을 어디서 주워들은 뒤로 주는 건 섹스고요. 그렇다고 자기가 섹스 자체를 즐기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아낌없이 주는 거죠, 젠장.

영화는 그냥 낡아보입니다. 김호선의 스타일은 70년대 당시 관객들에게 상당히 자유분방하고 신선해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요샌 그냥 서툴러 보이기만 하는군요. 그렇다고 그 낡음을 보완하거나 거기에 새로운 무언가를 더할 바탕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장미희를 비롯한 주연 배우들은 모두 그냥 둥둥 떠다닙니다. 이들은 모두 전문 성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대신하고 있는데, 극단적인 성우 스타일과 이런 영화들의 가식적인 대사들이 결합되면 어떤 코미디가 연출되는지는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네, 이번 상영 때에도 "선생님은 바보!"라는 대사가 나오자마자 제 주변에 앉아 있던 관객들은 자지러지더군요! :-)

전 읽지도 않은 소설에 대해 뭐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조해일이 원작에서 이 성처녀적 캐릭터에 어떤 깊이를 담아냈는데 영화에선 그걸 살리지 못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영화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5년전의 인기가 지금까지 제대로 유지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거죠. 세상엔 나이가 들면서 고전이 되는 영화가 있고 고물로 끝나는 영화가 있는데, [겨울여자]는 어쩔 수 없는 후자입니다. 현대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70년대 한국 영화 여자 주인공들이 얼마나 흉악스럽게 내숭을 떨었는지 보여주는 자료 이상은 아닌 듯 합니다. (04/01/05)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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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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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그건 너!

성음(SEL 20 0015), 19730620

이용우 garuda_in_thom@hotmail.com | editor
이장희와 동방의 빛, 포크에 플러그를 꽂다

이장희를 음치 가수로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당대(當代), 그러니까 이장희가 데뷔하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970년대의 얘기다. 멀리 트로트 가수나 그룹 사운드의 싱어와 비교할 필요 없이, 송창식이나 조영남 같은 성량이 풍부한 가수, 반대로 김세환이나 윤형주처럼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가수와 단순 비교한 결과였을 듯하다. 되는대로 부르는 듯한 이장희의 노래는 성의 없게 들리고 상대적으로 음정이나 박자의 어긋남이 귀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그런 솔직한 창법이야말로 이장희를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은 매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적 계기가 된 음반이 3집 [그건 너!]이다.

[그건 너!]는 1973년 발표된 가요음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판매량을 기록한 '대박' 음반이다. 1972년 데뷔 앨범 [영 페스티벌 Vol. 1(이장희)](유니버어살), 2집 [영 페스티벌 Vol. 4(이장희 2집)](유니버어살)로 서서히 주가를 끌어올리던 이장희는 3집의 타이틀 곡인 "그건 너"의 대 히트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 같은 입말(口語)에 가까운 표현, "전화를 걸려고 동전 바꿨네 종일토록 번호판과 씨름했었네" 같은 상큼한 표현, 그리고 "그건 너"라는 직설적인 화법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고, 이장희의 털털한 보컬은 그 가사들을 실어 나르는데 적격이었다.

그게 다였을까? [그건 너!]를 단지 이장희의 히트 음반으로만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음반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이 음반은 이장희의 세 번째 솔로 앨범인 동시에 (후에 '동방의 빛'이란 이름을 갖게 되는) 밴드의 멤버십을 실질적으로 가지고 만든 첫 음반이기도 하다. 동방의 빛이란 밴드 이름은 음반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음반의 뒤 표지에 적혀 있는 연주자 명단은 이들의 존재를 알려준다. 강근식(일렉트릭 기타), 이장희(보컬, 리듬 기타), 조원익(조원익), 배수연(드럼)이 그들이다.

동방의 빛이란 팀워크가 아니었다면, 이 음반의 성공은 절반만 가능했을 것이다. 하나의 동기(두 마디)에서 한 마디 노래하고 한 마디 쉬는 형식을 애용하는 이장희의 자작곡들은 기타, 베이스, 드럼 등 다른 파트의 '반주' 이상의 '합주'로 어우러지면서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건 너"가 대 히트했던 요인을 분석하면서 출중한 악기 연주와 편곡을 빠뜨려선 곤란하다. 배수연의 드럼은 그리 나서지는 않지만 세 번째 박자에 액센트를 주며 특이한 리듬감을 주다가(버스 부분) 백비트로 변화하고(코러스 부분), 대신 조원익의 베이스 기타는 저음부를 가로지르며 종횡무진 누빈다. 물론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강근식의 기타이다. 버스 부분에서 잔잔한 물결이 파문을 그리듯 퍼져나가는 연주를 펼치다가, 그 유명한 코러스 부분에서 이장희의 노래와 '매기고 받는데' 이는 그 부분을 '핏대 세우며 "그건 너~" 하고 싱얼롱'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다른 곡들도 대부분 기타, 베이스, 드럼만으로 충분하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연주와 편곡이 잘 짜여져 있다. 1집에 실려 인기를 모은 "그애와 나랑은"과 "친구여", 그리고 2집에 실렸던 "애인"과 "비의 나그네"의 재녹음 버전은 원래 버전에 있던 오르간 연주를 과감히 생략하는 대신 '일렉트릭하지만 명징한'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강근식의 기타는 "그애와 나랑은"의 버스 부분에선 마디마다 트릴 주법(해머링과 풀링을 빠르게 반복하면서 원음과 도움음을 빠르고 연속적으로 반복하는 주법)으로, "친구여"와 "그애와 나랑은"의 코러스 부분에서는 클린 톤의 하모니를 이루며 미끄러지듯 연주하면서, 빈 사운드를 감싸는 것 이상으로 곡을 주도하고 있다. "애인"과 "비의 나그네"는 원래 버전이 어쿠스틱 기타 위주인 데 비해 새 버전은 일렉트릭한 연주로 탈바꿈했다.

전체적으로 1집에 비하면 오르간이 빠져서 간결함이, 2집에 비하면 어쿠스틱 기타가 한발 물러나 있어 일렉트릭함이 돋보인다. 'All These Songs Are Came From A Room'이란 표지에 적힌 문구와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사운드이다. 방(구석? 화실로 추정되는 실내 공간)에서 만들어진 곡들치고는 뜻밖의 일렉트릭 사운드라는 의미다.

그런데 사실상 이 음반은 이장희와 강근식의 이중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음(知音) 사이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강근식은 보컬이 나오는 와중에도 부단히 주요 리프나 장식적인 음을 연주하고, 코러스 부분에서는 어김없이 보컬과 매기고 받는다. 이장희의 보컬은 일반적인 포크 가수처럼 보컬이 명징하지 않지만, 강근식의 기타는 딜레이와 벤딩 등 다양한 이펙트와 주법을 활용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클린 톤의 분명한 느낌을 준다. 그의 기타 연주는 일렉트릭하지만, 로킹하지는 않다. 가령 잔잔하고 부드러운 "촛불을 켜세요"는 아기자기하고 이국적인 기타 연주로 맛깔스러운 느낌마저 준다.

[그건 너!]를 계기로 이장희와 동방의 빛은 하나의 음악 어법을 정립하게 된다. 그걸 단순히 포크 록으로 지칭하는 것은 간편하긴 하지만 일면적이다. 이 음반에서 들려주듯 이들은 쳇 앳킨스(Chet Atkins) 풍의 컨트리 "자정이 훨씬 넘었네"부터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영향이 느껴지는 "당신은 누군가요", "누구일까"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지 않은가. 이 음반은 이장희 개인에겐 스타의 지위를 안겨주었으며, 동방의 빛이 당대의 포크 걸작들의 숨은 조연을 맡게 되리라는 걸 예견케 했다. 달리 보면, 이 음반은 포크의 다양한 진화와 변이, 그 중에서 '플러그를 꽂은 포크'의 한 가능성을 남겼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단촐하게 노래하던 포크는 이제 대중화와 함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20021126

<부연>
1. 이장희는 1973년 1월 1일부터 동아방송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0시의 다이얼]을 진행했다. [0시의 다이얼]과 3집 [그건 너!]는 모두 인기가 높았다. 선후 관계를 떠나 이런 게 시너지 효과가 아니겠는가.
2. 동방의 빛의 멤버들은 이장희를 제외하곤 원래 성음레코드의 세션 맨들이었다. 이장희와 강근식은 이미 1968년부터 절친한 친구사이였고, 조원익, 배수연 등은 레코딩 세션 맨으로 활동하면서 호흡을 맞췄다. 동방의 빛은 1973년 봄, 강근식의 군 제대와 이장희의 음반 녹음을 계기로 이장희, 강근식, 조원익, 배수연이 의기투합하여 결성되었다(이후 배수연 대신 유영수가 들어오고 건반의 이호준도 새로이 가세하는 멤버 변동을 겪는다). 이들은 4월과 5월, 송창식 등의 음반 녹음에 참여하면서 최고의 레코딩 세션으로 이름을 날렸다. 해체 이후에는 각각 영화음악, CM송, 레코딩 세션 등의 분야에서 명성을 이어나갔다.


수록곡
Side A
1. 그건 너
2. 촛불을 켜세요
3. 그 애와 나랑은
4. 당신은 누군가요
5. 친구여
Side B
1. 누구일까
2. 자정이 훨씬 넘었네
3. 애인
4. 비의 나그네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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