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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vol.4/no.22 [20021116]


영화음악
별들의 고향

성음(SEL 20 0029), 1974

최지선 fust@nownuri.net | editor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사운드트랙음반의 정수

검열이라는 정치적 억압 장치와 석유파동이라는 경제적 불황이 중첩된 암흑기에도 불구하고(아니, 그 덕에. 이것이 영화의 흥행 법칙 아니던가) 1970년대 중반은 흥행 영화들이 속속 태동된 시기였다. 이는 관객동원 차원 이상의 신조류를 배태한 결과물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과 [어제 내린 비](1975),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 [겨울여자](1977)는 1970년대 한국 영화계에서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낸 영화일 것이다. 신파적 멜로 드라마의 한 전형(혹은 변형)이 일명 '호스티스 영화'를 통해 만들어졌고, 당시 청년들의 막연한 좌절감, 패배감이 은유적으로 혹은 굴절적으로 재현된 '청년 영화'가 탄생한다(물론 '청년 영화'의 대표작으로는 [바보들의 행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장호의 성공적 데뷔작인 [별들의 고향]은 바로 이런 영화들의 신호탄이 된다. 경아(안인숙 분)라는 비련의 여성을 통해 드러난 것이, 가학적인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말하든, 비정상적으로 급속하게 전개된 도시화, 산업화의 산물이라고 말하든 간에... 영화의 흥행이 작품성을 논하는 지표가 될 수는 없지만 당시 46만이라는 관객 동원은 무시할 수 없는 지표가 된다(이 기록은 후일 [겨울 여자]에 의해 갱신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영화 속에서 '화면 속의 화면(frame in frame)'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 장치는 거울이나 유리창에 쓸쓸하고 초라한 모습을 비추는 효과(특히 첫 남자(하용수 분)와의 비극 끝에 결혼한 남자(윤일봉)와의 침실은 거울로 가득하다)와 더불어, 창틀, 가구, 벽을 통한 (특히 베드씬) 엿보기 효과를 복류시킨다.

또 하나의 영화적 장치는 음악이다.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기능을 하는데 비애의 분위기와 음울한 분위기가 음악을 통해 부가된다. 이런 덕분에 영화뿐 아니라 음반도 베스트셀링을 기록한다(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1974년 당시 한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10만장이라는 수치도 언급된 바 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은 슬로 템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다.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와, 여러 번 입힌 흔적이 역력한, 영롱하게 정제된 기타 사운드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아련한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가 간간이 섞이면서 영화 속의 슬픔이 반향한다. 이런 애조는 연주곡 버전에서 황천수(강근식의 회고에 의하면 나이트클럽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색소폰의 구슬픈 선율에 의해 증가된다. 문호(신성일 분)와 경아가 만날 때 술집에서 흐르던 곡이다. 서정적인 클린 톤 기타와 다소 다듬어지지 않는 보컬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런 스타일은 강근식을 비롯한 동방의 빛 편곡의 어법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외에 이장희의 보컬이 들어간 곡으로 "한잔의 추억"이 있다. 퐁퐁거리는 가볍고 부유하는 느낌을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가 냈고 보컬과 같은 선율을 신시사이저가 따라간다. 특히 후렴부에서 기타는 보컬과는 다른 식으로 기타 자신만의 고유한 간단한 선율이 생성하는데 이 역시 강근식의 전매특허라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외에 서정적인 트랙 "이젠 잊기로 해요"와, 3박자 월츠풍 배경음악에 "오랜만에 누워보는군"이라는 유명한 대사가 '살떨리는' 목소리에 실린 다이얼로그 트랙(아마 당시에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까지가 '목소리'가 들어간 곡이다.

그러나 이 앨범의 백미는 연주곡들에 있다. 우선 "별들의 고향"이라는 대제목 아래 A, B, C 연작으로 구성된 3부작이 눈에 띈다. 첫부분인 "별들의 고향 A - Prologue"는 바람(과 비슷한) 소리로 시작해 황량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곧 질주하는 듯한 드럼이 깔리며 두 코드로 이루어진 피아노가 입혀지는데, 거칠고 굵은 선의 퍼즈 톤 기타 리프(C 파트인 "한 소녀가 울고 있네"의 선율)와 연결된다. 이후 계속 변주되던 이 곡은 중반부 이후 빠른 템포로 변하며 신경질적인 기타와 플루트(크레딧에는 없지만 조원익이 연주)가 조우한다. "별들의 고향 B - 사랑의 테마"는, 오프닝 씬에서 문호가 죽은 경아를 애도하며 회고할 때 깔리는데, 말 그대로 쓸쓸하고 애잔한 애가다. "별들의 고향 C - 한 소녀가 울고 있네"는 연주곡이 아닌 이장희가 노래하는 곡인데 전주부터 의미심장하다. 일그러지듯 몰아치며 시작하는 무그가 사뭇 불길하다. 이장희의 '우우'하는 스캣과 함께 조원익 연주의 플루트 소리가 이곡에서도 들리는데, 몽환적이고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주려 했다면 다소 미진한 게 아닐까.

이런 "별들의 고향" 연주곡 연작은 "별들의 고향"이라는 이름을 단 다른 이본(異本)들로 이어진다. 알파벳 이름이 같은 앞서 설명한 곡들과 서로 대응하는 변주곡들이 아닐까 싶지만 서로 다른 이형(異形)의 곡들이다. "별들의 고향(D)"는 네 음을 반복하는 집요한 베이스 기타, 비명과도 같이 순간순간 기괴하게 피어오르는 음향들이, 예쁜 소리와 불협화음을 오가는 피아노와 함께 영화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심정을 담아 낸다. 주인공들의 행복한 꿈과 불행한 현실을 대비라도 하려는 의도였을까.

무엇보다도 이런 연주곡에서 두드러지게 다가오는 것은 은연 중에, 혹은 공공연히 깔리는 재즈적 어프로치일 것이다. "별들의 고향(B)에서, 리프와 같은 역할을 하는 끊어치는 듯 둔탁한 베이스 기타가 하층부를 구성한다면, 유연하고 영롱한 클린 톤 기타나 뮤트론이 입혀진 기타의, 블루스와 재즈적 화성에 입각한 연주가 상층부를 구성한다. 다소 빠른 템포의 "별들의 고향(C)"는 뮤트론을 사용해 스트러밍하는 기타의 코드 진행에 따라 각기 다른 톤의 기타와 뿅뿅거리는 무그 신시사이저가 주 선율을 주고 받는(만나고 헤어지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타 톤의 체인지 등에 의한 이러한 대조적인 전개, 각 악기의 인터플레이는 재즈와 록이 결합한 형식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재즈적 기반은 짧은 소품 "Wedding March"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이처럼 캐치하고 서정적인 대중적 트랙들과 더불어, 다소 과소평가되었지만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트랙이 공존하기 때문에, 영화와는 독자적으로 감상 가능한, 음반 자체만으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 아닐까. 20021208

* 사족 : 이 영화음악 음반의 작품성과 흥행성의 양대 성과에 힘입어 후일에도 커버만 바뀌거나 수록곡이 뒤바뀌기도 하는 등 몇 차례 재발매되었다.

* 연주

동방의 빛: 강근식(기타), 이호준(오르간), 유영수(베이스), 조원익(드럼)

* 영화 크레딧

원작: 최인호
안인숙 신성일 윤일봉 하용수 백일섭
각색: 이희우
촬영: 장석준
녹음: 한양 스튜디오
주제가 작곡 노래: 이장희
음악: 강근식
개봉: 1974년 04월 26일

수록곡
Side A
1.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2. 별들의 고향 A. Prologue
3. 별들의 고향 B. 사랑의 테마
4. 별들의 고향 C. 한 소녀가 울고 있네
5. 이젠 잊기로 해요

Side B
1. 한 잔의 추억
2.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쌕스펀 독주)
3. 별들의 고향(B)
4. Wedding March
5. 별들의 고향(C)
6. 나는 열아홉살이에요
7. 별들의 고향(D)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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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식스
물새의 노래/초원의 빛(황우루 기획 작품집)

Grand(GH 00019), 1971

최지선 fust@nownuri.net | editor

물새, 초원... 그리고 '땐스 투 더 뮤직!'

1970-1971년은 히 식스의 황금기였다. 1970년 그룹사운드들의 꿈이라 할 수 있는 '플레이보이컵 쟁탈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는 1970년 제2회에 이어 1971년(7월 16일부터 4일간) 제3회 대회까지 (록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한다. 이들의 황금기는 음반제작의 태도에서도 확증된다. '황우루 기획 작품집'이라는 부제를 보자. 황우루라는 존재가 작편곡자쯤 된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그는 단순한 '기획자'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 당시 실제 음악에 관여했든 아니든) 기성 작곡가 출신 '프로듀서'의 이름을 아예 삭제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을 자신들이 직접 음악을 통제 관장한다는 자의식을 천명한다. 전업 작곡가가 아니라 밴드가 직접 편곡, 프로듀싱을 (표기)했다는 점 외에도 저음부, 특히 킥 드럼(베이스 드럼)은 (여전히 잘 들리지 않지만) 이전보다 조금 낫게 들린다는 점 역시 레코딩 면에서의 진일보로 보인다. 1970년 말 경 재즈 공부하러 도일한 김용중이 탈퇴하고 최헌(세컨드 기타, 보컬)이 가입한 이외에 김홍탁(리드 기타)과 이영덕(리드 보컬, 기타, 오르간)(때때로 이들은 '더블 리드 기타' 시스템이 된다), 유상윤(오르간, 플롯), 조용남(베이스, 보컬), 권용남(드럼)은 안정적인 라인업을 이어갔다.

앞서 지적한 부분이 과거와의 절연이라면 다양한 음악적 열망이 구현된 점은 과거의 계승이 아닐까. 1971년에 발표한 이 음반의 두 곡은 '창작곡'인데 이 곡들을 각 앞뒷면의 머릿곡에 수록한 뒤 나머지에는 다양한 커버곡을 포진시켰다. 즉 소울(특히 모타운), 비틀즈 비트 팝, 칸쪼네, 포크 록 등까지도 자신들의 자장안에 포함시켰으며, 이 커버곡과는 다소 이질적인 주류 문법의 '가요' 스타일 노래를 타이틀로 내건 것이다. 두 창작곡들 "물새의 노래" "초원의 빛"은 히 식스 본인의 곡은 아닌데, "초원의 빛"은 히 식스(김홍탁)의 전원주의의 절정인 '초원' 시리즈의 완결판인 셈이다. 공포스러운(?) 가성의 여성 배킹 코러스 뒤로 '물새', '초원' 등 자연 소재에 걸맞는 파도 소리, 새 소리 등이 삽입되는 단조 '가요'다. 플롯, 오르간이 선율과 배킹을 담당하는 점도 비슷하다. 김홍탁 본인도 강조하지만 자연이 등장하는 작사의 측면 역시 당시의 관습과 단절을 이룬 점일 것이다(확대해석하면 신중현의 가사가 '도시의 거리(주로 명동 거리)'를 묘사했다면 키 보이스는 '해변', 히 식스는 '초원'을 노래했다. 둘 다 '갑갑한 현실을 떠나자'는 것은 같지만 키 보이스는 '해변의 쾌락과 낭만'을 구체적으로 그린 반면, 히 식스는 '초원의 평온과 적막'을 유토피아/디스토피아적으로 그렸다고나 할까).

조용남의 소울에 대한 취향은 여전해서 많은 소울 곡들이 커버되어 있는데 "Dance to the Music" "Sing a Simple Song" 같이 시끌벅적하고 경쾌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의 소울, "I'll Be There" 같이 듣기 편한 부드러운 알앤비를 넘나든다.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I've Been Loving You Too Long"의 당시 일인자는 느리면서도 진한 보컬의 최헌이 아니었을까. "Sing a Simple Song" 같은 곡에서는 돌아가면서 부르면서 다른 빛깔의 보컬들을 뒤섞어놓는다. 그때까지도 최헌은 그렇게 주도적인 빛깔을 내뿜지는 않지만.

한편 당시 상레모(San Remo) 가요제는 국내의 번안곡 수입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 식스는 이런 동향에도 기민하게 움직인듯 "케세라(Que Sera: 뒷면 해설에는 Que Sara로 표기되어 있음)"라는 칸쪼네까지 포괄시켰는데, 이 노래는 1971년 상레모 가요제에서 이탈리아의 보컬 그룹(Ricchi e Poveri)이나 호세 펠리치아노가 출전했던 곡으로 국내에서도 트윈폴리오 등 많이 불렸다. 한때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오도되기도 했지만 원래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바다를 건너면서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인데, 히 식스 번안곡(조용호 번안)은 이런 원곡의 느낌이 살려진듯 고향을 떠나는 심경이 잘 담겨있다.

포크 록에 대한 히 식스적 해석이 투영된 곡으로는 "스카브로우의 추억"이 있는데, 빠르고 비트 있는 노래로 변화시키고 전주나 간주에는 현란한 혹은 사이키델릭한(?) 플룻과 오르간 및 와와 기타를, 후주에는 베이스와 드럼의 재즈적(?) 터치도 가미시켰다. "Here Comes the Sun"은 (포크 록 스타일에 가까운) 생톤의 여린 아르페지오 기타 및 이영덕의 맑은 보컬이 조화를 이룬다. 흥미롭게도 이전의 비틀스 커버곡 중에 'sun'이 들어간 노래인 "I Will Follow The Sun"이 상기된다.

이런 여러 스타일이 '다양함'인지 '산만함'인지 평가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자유겠지만,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통해 주류와 절연하는 가사, 음반을 통제하는 뮤지션으로서의 자의식, 무엇보다도 '현충일을 제외하고 364일 동안 공연했다'는 '라이브 밴드'로서 히 식스의 진가가 여실히 드러난 음반이 아닐까. 마이크를 앞에 한두 대 놓고 다같이 합주하는 원테이크로 레코딩하곤 했다는 당시의 제작 환경(일명 '스튜디오 라이브')을 잘 활용한 것이다. 특히 몇몇 곡의 경우는 아주 '생생하다.' 그들은 이렇게 인사한다. "히 식스를 찾아주신...여러분 ... 같이 즐거웁게 ... 춤 한번 추시겠어요?("Dance To The Music")"
20021002

수록곡
Side A
1. 물새의 노래
2. 케사라(Que Sara)
3. 스카브로우의 추억(Scaborough's Fair)
4. Dance To The Music
5. I'll Be There

Side B
1. 초원의 빛
2. I've Been Loving You Too Long
3. Stand
4. Here Comes the Sun
5. Sing a Simple Song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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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vol.4/no.22 [20021116]


김정호
김정호 Gold Two

애플/유니버설(K Apple 813), 1975

신현준 homey@orgio.net | contents planner

'포크'도 '가요'도 아니었던 새로운 양식의 성숙

김정호는 송창식과 더불어 1974-5년 경 '포크'를 대중음악의 주류로 확고하게 끌어올린 주역이다. 그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편지"를 제외한 어니언스의 히트곡들의 '진짜' 작곡자인 것이 알려지면서부터라는 사실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여기에 어떤 '전략'이 숨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이름 모를 소녀"과 이 곡이 그의 데뷔 독집 음반 [김정호 골드](1974)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는 점도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렇지만 1집 음반의 수록곡 대부분이 어니언스를 통해 '검증된' 곡이었던 반면 2집 음반인 이 앨범은 그의 '신곡'을 많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흥미롭다.

음반에는 "이름 모를 소녀"와 더불어 그의 대표곡의 하나인 "하얀 나비"가 뒷면 세 번째 트랙에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후미진' 곳에 위치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Young Family Series 1](K-Apple 798, 1974.11.4)미리 수록되어 이미 히트했기 때문일 것이다. 침소봉대가 되는 감이 없지 않지만 오랫동안 사랑받는 곡이니만큼 장황하게 설명해 보자. 못갖춘 마디로 시작하는 현악기가 전주를 만들어내고 노래가 나온 뒤에는 대선율을 만들어내는 점은 '김정호 작곡, 안건마 편곡'이라는 정보가 적힌 곡의 일반적 특징이다. 하지만 청자의 취향에 따라서는 '현악기를 남용한다'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 1집 수록곡들(특히 "이름 모를 소녀")에 비하면 절제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노래 뒷부분에는 현혜미의 백킹 보컬까지 더해져서 선율이 여러 층을 이루면서 고운 윤곽을 그린다. 이 곡만 그런 건 아니지만 왠지 '한국적'으로 들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5음계로 이루어진 멜로디가 중요한 이유겠지만 이 곡의 경우 리듬의 운용도 이유의 하나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드럼 연주는 트로트(?)와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베이스 연주는 컨트리의 베이스(이른바 '투 비트 베이스')와 유사한 패턴을 보이지만 '단지 유사할 뿐'이고 게다가 느낌은 트로트나 컨트리(한미 양국의 뽕짝?)와는 딴판이다. 림을 가격하는 백비트가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러밍이 '셔플 리듬'이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생각해 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러다가 고음의 보컬이 나오는 절정부("때가 되면 다시 필 걸...")의 네 마디가 되면 왼쪽 스피커에서는 스네어 드럼의 가죽부분을 때리는 강한 백비트가 나오고 (하이 해트 심벌이 아니라) 라이드 심벌이 12비트로, 즉 셋잇단음표를 네 번 울려댄다. 즉, 4/4박자의 곡이지만 4분 음표 하나가 셋으로 쪼개져 있다. 조금 논리를 갖춰서 해야 될 이야기지만, 이런 점이 김정호의 '포크'가 '한국적'으로 들리는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하얀 나비"가 사랑받는 또하나의 이유는 김정호의 작곡 치고는 드물게 A-A-B-C의 단순한 형식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즉, 김정호의 곡들 가운데 따라 부르기가 가장 쉬운 곡이다. 이런 점에서 앞면 네 번째 트랙에 수록된 "푸른 하늘 아래로"가 이 앨범의 또하나의 대표곡이라는 점은 이상하지 않다(이 곡 역시 앞서 말한 [Young Family Series 1]에 수록되어 있다). 뿜뿜거리는 관악기(트롬본)와 잔잔한 오르간이 이끄는 이 곡은 김정호의 곡 답지 않게 밝고 힘있는 곡이다. 이 곡 역시 템포와 패턴은 다르지만 리듬 파트의 운용이 "하얀 나비"와 유사하다. 컨트리 스타일의 바이올린 전주를 동반한 "기다림"이나 처절하게 구슬픈 현악으로 시작하는 "하얀 천사의 노래" 역시 유심히 들으면 베이스와 드럼의 탄력적인 운용을 통해 '처지는 느낌'을 저지하는 곡들이다. (개인적 소감일 뿐이지만 "기다림"은 "노란 샤쓰의 사나이" 이후 컨트리 스타일의 현악 주법을 대중음악에 '제대로' 응용한 곡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1집의 "외기러기"와 더불어).

다른 한편 "나를 두고", "꽃잎", "얼굴" 등은 느린 템포의 '발라드'이고, 창(唱)의 영향이 강한 보컬로 절창하는 절정부가 특히 중요한 곡들이다. 이 경우도 자칫하면 어울리기 힘든 관현악의 오케스트레이션과 드럼/베이스/기타의 리듬이 보컬의 진행에 맞추어 강약과 높낮이를 조절해 내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예는 매우 많지만 "꽃잎"에서는 절정부에서 베이스의 진행이 활발해지고, "얼굴"의 절정부에서는 16비트의 라이드 심벌이 등장하는 점만 지적해 둔다. 또한 "나를 두고"와 "얼굴"에서 등장하는 전기 기타는 플랜저라는 신종 이펙트를 통해 '이런 스타일의 음악에 어울리는 톤'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를 두고"에 등장하는 플루트 연주에서 당시 포크 음반의 편곡을 많이 맡은 또 한명의 쟁쟁한 젊은 음악인과의 '라이벌 의식(?)'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선의의 경쟁'이었을 것이다)

B면의 마지막 세 곡은 '김정호 작곡, 안건마 편곡'이 아니다. 그 가운데 두 곡은 김희갑의 기성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눈동자"는 김희갑 특유의 관현악으로 편곡되어 있지만 이승재가 부른 원곡에 비해 '유행가 창법'이 완화되어 있고, "달맞이꽃"은 김희갑의 섬세한 클래식 기타 연주와 김정호의 구슬픈 보컬이 오보에를 비롯한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곡 "새벽길"은 김민기가 만들고 양희은이 녹음했던 곡이 재즈풍으로 편곡되어 있다. 왜 편곡자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지금 와서 드는 의문은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왜 여전히 '포크'라고 불렀느냐는 점이다. '포크냐, 가요냐'라는 이분법 때문이었을까. 당시 '가요'란 트로트를 의미했으니까. 간혹 김정호의 음반은 '포크를 가요화(化)시킨'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통기타 순수주의'로부터 나오는 이런 평가는 '폄하'에 가깝다. 그렇지만 '포크와 가요의 이분법'을 허물고 새로운 대중음악의 양식을 형성한 것으로, 즉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었을까.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김정호는 오래 전에 망자가 되었으므로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람만이 아는' 유형에 속할 것이다. 20021119

P.S.
1. 김정호가 작곡한 곡의 형식은 'A-B-C-D'으로 불러야 할지, '기-승-전-결'로 불러야 할지, 'verse1 - verse 2 - pre-chorus - chorus'로 불러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꽤 복잡한 형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 또한 곡을 시작하는 화성이 I도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점도 특이하다. 예를 들고 "나를 두고"는 ii도 화성으로 시작하고(G 장조이므로 Am), "기다림"은 IV도 화성으로 시작한다(C장조이므로 F).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성'이 있는 이유는 아직 미스테리다.

2. 김정호의 창법과 작곡은 1980년대 이후 김두수에게 가장 잘 계승되어 보인다. 특히 "꽃잎"에서 어쿠스틱 기타 전주는 김두수의 여러 곡에서 '업데이트'된 형태로 남아 있다. 실제로 김두수는 1980년대 초 김정호가 운영하던 무교동의 생음악 살롱 [꽃잎]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경력을 시작했다.

수록곡
Side A
1. 나를 두고
2. 꽃잎
3. 하얀 천사의 노래
4. 푸른 하늘 아래로
5. 기다림

Side B
1. 얼굴
2. 하얀 나비
3. 눈동자
4. 달맞이꽃
5. 새벽길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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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집
넋두리

성음(SEL 20 0028), 19740320

이기웅 keewlee@hotmail.com | contributor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

유신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는 대한민국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병영이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5.16 쿠데타 이후 민간인 흉내를 내 보려던 군부정권은 이 시기에 이르러 '군부'의 본색으로 완전히 되돌아갔다. 즉 높은 사람 하나가 지나가는 말로 "나는 국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하면 하루 아침에 그 일대의 국화가 모조리 뽑혀버리고 마는 그런 본색으로 회귀한 것이다. 박정희는 음악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본인이 직접 만들었다고 하는 노래도 여러 곡이 있다. 그는 음악에 대한 취향과 주관이 뚜렷했고 좋아하는 노래와 싫어하는 노래의 구분도 명확했다고 한다. 이런 그가 자신의 충실한 심복들 앞에서 "저 노래는 왜 저 모양이야?"라고 한마디라도 했다면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익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금지곡은 유신시대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었다. 그러나 '창법미숙'이나 '허무감 조장' 같은 것이 금지곡의 사유가 될 수 있었던 때는 오직 유신시대 밖에는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박정희의 귀에 거슬리는 노래는 만들지도 못하고 부르지도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양병집의 데뷔 앨범 [넋두리]는 유신정권이 한창 기세를 높이던 1974년 3월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 앨범은 발표 3개월만에 금지처분을 받고 전량 수거되었다. 이 앨범의 무엇이 유신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는지를 밝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단 표지부터가 심상치 않다. 조소하는 듯한 눈초리에 담배를 꼬나 문 양병집의 얼굴은 그들에게 분명 불손하고 반항적인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의 거만한 듯 냉소적인 목소리도 그들의 귀에 곱게 들렸을 리 없다. 가사에 담긴 촌철살인의 풍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양병집은 흔히 한대수, 김민기와 함께 한국의 3대 저항가수 중 한 명으로 불린다. 그리 정확한 분류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밥 딜런(Bob Dylan)이나 피터 폴 & 매리(Peter Paul & Mary)가 저항가수로 분류되는 맥락이라면 굳이 부정할 이유도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분류법으로 인해 이들 간의 차이를 놓쳐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들 세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 이상의 확연한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김민기가 지사적 풍모의 서정시인이고 한대수가 이상주의적 히피라면 양병집은 신랄한 언어의 풍자가다. 김민기가 토착적 정서에 기반한 한국적(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포크를 추구했고 한대수가 현대적이고 자유분방한 미국식 포크를 연주했다면 양병집은 아메리칸 포크의 원곡에 한국 현실을 빗댄 가사를 붙이는 절충적 작품활동에 주력했다.

양병집의 언어에는 시퍼런 날이 서있다.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right"에 한글 가사를 붙인 그의 대표작 "역(逆)"은 날카롭게 벼려진 그의 언어가 가장 섬뜩하게 드러나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도입부에서 이 곡은 단지 동화적 상상력으로 채색된 재미있는 노래일 뿐이다. 그러나 이 곡의 말미에 도달하면서 그는 깊숙이 숨겨놓았던 비수를 예리하게 꺼내 든다. "백화점에서 쌀을 사는 사람/시장에서 구두 사는 사람…" 지금까지 초현실의 세계를 부유하던 이미지들은 이 한 줄의 가사에 의해 느닷없이 현실로 곤두박질치고 모든 것은 불현듯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무작정 상경한 시골 젊은이의 입을 빌어 도시 속에서의 인간 소외를 노래한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원작의 "서울하늘(1)"도 그의 언어가 빛을 발하는 곡 중의 하나다. '나도 돈 좀 벌고싶어서/나도 출세 좀 하고싶어서/일자리를 찾아봤으나/내 맘대로 되지 않습디다…' 양병집의 소박한 언어 표현은 청년의 순진한 소망을 짓밟아 버리는 도시의 비정을 더욱 사실적으로 드러내는데 효과를 발휘한다. '아! 두 번 다시 안올랍니다…' 청년의 도시 순례기는 이 짧은 탄식으로 끝을 맺는다. 비록 찰나에 불과한 탄식이지만 여기에 깃든 염증과 혐오의 밀도는 이 곡 전체에 대한 충실한 요약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금지곡 파동에 희생 당하면서 전설로 격상되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 앨범은 음악적인 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가장 큰 아쉬움은 양병집이 지닌 풍자가로서의 면모가 일관되게 추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총 10개의 수록곡 중에서 그의 날카로운 풍자가 돋보이는 노래는 기껏해야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잃어버린 전설", "아가에게", "나는 보았지요" 등은 현경과 영애가 불렀으면 더 잘 어울렸을 법한 포크 발라드 곡들이고 우디 거스리의 "This Land Is Your Land"를 번안한 "너와 나의 땅"은 그의 노래치고는 지나치게 씩씩하고 '건전한' 곡이다. 양병집의 풍자가 빛을 발하는 곡들을 보면 주로 외국곡을 번안한 작품들, 그 중에서도 밥 딜런, 우디 거스리, 피트 시거(Pete Seeger) 등의 번안곡들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피터 폴 & 매리처럼 다소 성향이 다른 아티스트의 번안곡은 물론 그의 자작곡들에서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예리한 풍자는 좀처럼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그의 풍자가 지닌 근본적 한계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비록 풍자적인 가사로 이름을 날리기는 했지만 양병집은 자신의 풍자 정신에 적합한 자기만의 음악적 어법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따라서 그는 외국 대가들의 어법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의존하지 않을 때는 당시 한국 포크의 통상적이고 습성화된 어법에 쉽사리 발목을 잡혔던 것이다.

이 앨범이 지닌 또 하나의 문제는 노래와 연주의 심각한 부조화다. 세션을 맡은 동방의 빛이 수많은 앨범에서 탁월한 연주를 들려준 한국 최고의 스튜디오 밴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기서의 실망스러운 연주는 다소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양병집 자신도 "강근식의 기타는 내 노래와 잘 맞지 않았다"고 술회한 바 있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비단 기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앨범에서 양병집과 동방의 빛의 호흡은 한마디로 물과 기름이다.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 최소한의 의견 교환이라도 이루어졌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소낙비"에서 강근식이 연주하는 기타 필인은 양병집의 보컬을 계속 차단하면서 거북한 장면을 연출하고, "너와 나의 땅"에 나오는 쳇 앳킨스(Chet Atkins) 풍의 기타는 단순하고 소박한 원곡에 지나칠 정도의 세련미를 부과한다. 이호준의 키보드가 만들어내는 현대적 사운드도 "타복네"의 토속적 정서와 끊임 없이 충돌을 일으키고, "아가에게"에서는 급기야 노래방 수준의 싸구려 센티멘탈리즘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이 앨범의 '강요된' 실패 이후 양병집의 음악인생은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두번째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6년을 기다려야 했고 세번째 앨범이 나오는 데는 그로부터 또 5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이 두 앨범은 모두 상업적 참패를 면치 못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의 팬들 조차 이 앨범들을 크게 반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넋두리] 이후 긴 세월을 경과하면서 양병집이 지닌 풍자의 칼날은 크게 무뎌져버린 것이다. 이는 [넋두리]로 야기된 고초를 감내하면서 도달한 삶의 깨달음 때문일 수도 있고 인생의 연륜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인생관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는 풍자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한국 대중문화의 성향 탓일지도 모른다. 양병집과 서유석 이래로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한국에는 아직도 이렇다 할 풍자가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비판적이거나 저항적인 음악인들은 많지만 그들 대부분은 지루할 정도로 진지하거나 진지한 척 한다. 하긴 코메디언이 농담 삼아 한 얘기를 가지고도 명예훼손 운운하며 흥분하는 환경에서 어떻게 풍자가 발을 붙일 수 있겠는가?

어렵게 내놓은 앨범들이 잇달아 실패하면서 양병집은 이제 거창한 음악적 야심을 추구하기 보다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만족하게 된 듯 하다. 1985년의 [넋두리 II] 앨범 이후 그는 그 동안 발표된 자신의 레퍼토리를 다시 부르는 것이로 음악활동의 여생을 보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넋두리]의 음악적 불만을 바로잡는다는 의미도 없지 않다. 실제로 그가 다시 녹음한 "타복네", "소낙비", "서울하늘(1)" 등은 [넋두리]에 실린 오리지널보다 훨씬 나은 음악적 결과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만시지탄에 불과한 것이다. 비록 후기의 버전들이 듣기에 더 좋다고 해도 한 시대의 표현으로서 [넋두리]가 지닌 특별함은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앨범으로서의 [넋두리]는 짧고 기구한 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은 한소리, 노래얼, 메아리, 울림터 등 각 대학 노래패의 노래집에 악보의 형태로 살아 남아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았다. 포크가 음악이기 이전에 노래고, 듣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부르기 위한 것이라면, [넋두리]는 한국 포크 사상 이러한 포크의 본질을 가장 충실하게 체현한 작품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20021222


수록곡
Side A
1. 서울하늘(1)
2. 잃어버린 전설
3. 타복네
4. 아가에게
5. 나는 보았지요
Side B
1. 너와 나의 땅
2. 소낙비
3. 서울하늘(2)
4. 역
5. 그녀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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