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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지 페스티벌 2006

홍대입구에서
프린지가 뭐지?
예술표현의 자유를 축제의 원천으로 삼는
프린지 페스티벌
1947년 영국 에딘버러에서 시작되었다고.
그래도 뭔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토요일 오후
날씨는 무척 무덥다.
습기가 많아 그런지
축축 늘어진다.
습하고 더운 여름 어느 날

시내버스를 내리니
햇볕은 나지 않았지만
은근히 덥다.

푹푹 찐다는 표현이 맞다.





홍대 입구다.
까만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공연을 한다.
아 저 것이
맨인블랙 - street magic 이구나

조금 서서 보다 발길을 돌린다.

한 바퀴 돌아 보아야 겠다.
등줄기 에서 땀이 흐른다.
아 더운 날씨다.

홍대앞 놀이터다




프리마켓
뒤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프리마켓 공연





화장실
화장실 낙서도 홍대입구답다.




날씬는 여전히 덮다.
조금 보다가
다시 일어나
홍대 입구 골목이나 구경해 보자.





홍대 입구 상점에 있는 벽화





- 제 2편에 계속 -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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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렬천


그 왕기가 있었다는 곳이다

아직도 물이 흐르고 있다. 소량이지만

이 곳 때문에 일제가 더 이 경희궁을 철저히

파괴했는지도 모르겠다.

왕의 기운이 있는 이 곳이 일본으로서는

심기가 편하지 않았겠지.

그래서인지 유독 왕궁 중에서 가장 파괴가 심했고

지금도 그 후유증을 겪고 있는 곳이다.

아마 앞으로 영원히 복원이 불가능 할 것 같은.



처음 지었을 때는 99개의 전각이 있었으나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는120여 개의 전각이 있었다고 하는 데도 있다.

99개든 120여 개든 그것은 중요항 것이 아니고

지금은 3척 밖에는 없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 많은 궁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한 번 훼손된 궁을 다시 옛 모습으로 복원하기는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다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오늘은 "왕의 일상"을 자정전에서 한다.

왕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방.

수녀님이 조용히 우리의 옛날을 회상해 보는 듯 하다.



"왕의 일상" 예행연습을 한다.

발걸음이 느리다.



느린 발걸음을 보며 빠르게 사는 오늘을 되돌아 본다.

빠름과 느림. 과거와 현재

미래로 갈수록 사람들은 과거로의 회귀를 원한다.

그러나 한번 붙은 속도는 멈추기 힘든다.



경희궁 밑에는 벙커가 있다 한다.

일제가 미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하여 파 논 방커라고.

남의 궁궐에 방커를 파 놓다니.

일본 학생들이 수학여행 와서 이 곳을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



경희궁 뒤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많이 있어

아카시아 향기가 바람에 날리어

그 향기는 코 끝을 자극한다.

아카시아도 외국에서 건너온 나무

우리 것은 어디에 있는 지



아카시아 향기날리는 경희궁에서

- 끝 -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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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화문도

광화문, 돈화문같이

궁의 문에는 자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이 것은 왕이 선정을 베풀어 백성을 감화시키고

제도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흥화문 글씨는 원래 조선 때 명필 이신이 썼는데

그 당시 그 현판의 글씨가 빛을 발휘하여

문 밖이 훤하였다고 하여 야조개대궐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현재 붙어 있는 현판은 그 후에 다시 써진 것이라고.-

들어가니 왼쪽에 구 서울고등학교가 있던 곳이라는 표지가 있다.

예전에 일제에 의하여 조선총독부립중학교가 있었던 자리다.

일제의 자식들을 교육시키던 곳

그리고 해방되고 서울중고등학교가 되고

80년대 후반 강남 서초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역사를 거슬러 올라

광해군 재위 9년 (1617년)

김일룡은 광해군에게 말한다.

전하 새문동에 왕기가 있다 합니다

왕기가 무엇인가?

왕의 기운입니다. 왕이 태어난다는 것이지요

뭐 왕이 태어나.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왕을 내어 놓으셔야 합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곳에 궁을 만들어야 합니다

광해군은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는 경희궁을 짓기 시작한다.



궁에 대한 깊은 애착

궁을 짓는 중간에도 궁에 직접 들려 계속 진척사항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궁의 이름을 경덕궁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그 후 영조가 원종의 시호가 경덕이어 이름을 지금의 이름인

경희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8년이 걸쳐 1623년에 완공 했으나

그 해 3월 12일 인조반정에 의하여 왕위에서 쫓겨난다.

왕기를 막으려다. 경희궁을 완료하자 마자 왕기가 더 강해져

왕에서 내려오다니.

자신의 무덤을 자신이 판 격이다.



경희궁은 정원군(인종)의 사저 이었고

인조는 정원군의 아들이었다고 하니

풍수지리설은 우연의 일치 인지 정확히 맞았다고 할 수 밖에

궁을 만들었어도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그 궁에 그 왕기의 왕인 인조가 살게 될 줄이야.

광해군은 왕기의 왕을 위하여 궁까지 만들어 주는 결과가.

- 3편에 계속 -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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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요일

또 회사 가야 한다.

오후 2시까지

회사 가기 전에 가까운 경희궁이나 들르자.

경희궁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흥화문이다.



흥화문

이 곳을 버스를 타고 많이 지나다녔지만

왜 저기에 큰 문이 거기에 서 있는지

그리고 저 문은 무슨 문인지 솔직히 몰랐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도 궁하면

경복궁,창덕궁,덕수궁 그리고

또 하나 창경궁, 그때 왜 창경궁인지 잘 몰랐었다.

창경원이 더 친숙한 단어였었으니까.

그거 그렇고 학교 역사 시간에도 별로 배운 적이 없으니

흥화문. 알고 보니

파란만장한 역사를 갖고 있는 문이다.

위치도 지금 있는 위치가 아니란다.

서울역사박물관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흥화문이 일제 감정기때

이등박문의 절인 북문사의 사문으로 사용 되었다고

안중근 의사에 의하여 죽은 이등박문에 대한 분풀이 였을 것이다.



[현재의 구세군 빌딩]

이 곳이 원래 위치라고 지금은 다른 곳에...

그렇다고 남의 궁궐의 문까지 지들 맘대로 함부로 옮기다니.

그리고는 그 후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 되었었다고 한다,

그 곳에 있던 흥화문을 1988년에 옮겼다고 한다.

88 올림픽을 한다고 나라 전체가 북적이던 해

흥화문은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고 좋아라



그 후

와 봤더니

어찌할꼬 어찌할꼬

만고 풍상 다 겪고

내 살던 곳 와보니

내 있던 자리는

어느 못 생긴 놈이

떡 하니 앉아

자기 자리라고 우기고 있네

이 내 몸 갈 곳 없어 헤메니

내 있던 곳은 아니지만

근처에 가서 그냥 조용히 있으란다.

그 오랜 시간 타향살이 하다

이제 좋아라 와서 보니

내 집도 못찾고

대충 근처에 있으라니

처량하다.

이내 신세

이내 신세 흥화문

그래도 왕년에는

임금님의 궁을 지키는

대문으로

나도 한 가닥 했었는데

서글퍼라

이내 신세

세월이 가도 정신은 남아 있어야 하는 것

누가 정기를 일으켜 세워 줄꼬

- 제 2편에 계속 -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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