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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편에 이어



일제의 감시와 주도권 안으로 들어가

빠른 시간에 여자의 몸으로

그만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본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이었으니.

그리고는 자기 맘대로 행동한다.

일제도 맘대로 못하는 한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는 매일같이 궁 안으로 가마를 타고 드나든다.

처음에는 가마 안을 살펴 보았겠지만

매일 주는 수고비와 이미 얼굴을 잘 아는 입장에서

한참 뒤에는 가마 안을 살펴보는 것 없이 그냥 다녔다.

예나 지금이나 돈에는 약한가 보다.

그리고 안면 장사는 어느정도 봐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가마가 무사통과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마에 고종과 순종을 태우고 유유히 성문을 빠져나가 러시아공사관으로 간다.

그리고 한 참 뒤에야 일제는 알게 된다. 한 여인의 책략에 당한 것을

그 사건이 아관파천이고

그 공사관이 바로 이 구러시아공사관이다.

민족의 슬픈 역사가 묻혀 있는 곳.

그런데 아직도 그 슬픈 역사는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앞에는 사적이라고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돌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유리창은 깨어져 열려 있고



출입문은 누군가가 끼워 놓은 돌멩이가 아직도 문틈에 있고

벽들은 금이 가서 언제 어떡해 될지 모를 노릇이다.



그리고는 우리나라 사적은 안 지키고 남의 나라인 미국을 지켜준다고

버젓이 보초를 서고 있으니 쯧쯧쯧.

어디 가서 창피해서 말도 못하겠다.



사적을 위해 보초를 서는 것이 아니고 미국을 위하여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이 견학을 와도 가까이 가 보지 못하고

그냥 멀리서만 언덕 위에 저런 하얀 건물이 있구나 하고 돌아가야 한다.

그냥 와서 저 것이 아관파천의 그 건물이구나 하고 가는 것하고

직접 가까이 가서

이 곳이 고종이 덕수궁에서 탈출하여 정사를 보던 방이고 이 곳이 잠을 자던 방이야 라고

그 때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값진 교육일까?




고종이 정사를 돌보던 건물은 지금은 한국동란 시 없어지고 그 터에는 잡초만 무심하게

자라고 있다.

러시아 공사관 앞에 있는 저 꽃은 그 때의 그 슬픔을 알고 있는지.

- 끝-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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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편에 이어 -



아 아관파천

때는 바야흐로 1896년 2월 11일

대담하게 엄상궁은 고종과 왕세자인 순종을 모시고 덕수궁에서 러시아공사관으로

탈출을 성공한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정-순-헌-철-고-순 그 고종과 순종이다.

엄상궁의 그 탈출 전략은 후대에도 그 치밀함에 혀를 내 두른다고 한다.

그러면 엄상궁이란 누구인가?

1895년 일제에 의하여 명성황후가 살해되는 을미사면이 일어난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종이 엄상궁을 가까이 하였다. 고종의 승은을 받고

고종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얼굴은 예쁘지 않았고 나이도 고종보다 7살이나 위였다고 하니

그가 갖고 있는 머리와 책략이 고종을 사로잡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고종과 엄상궁이 같이 잔 것을 민비(명성화후)가 알았다고 한다.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명성황후의 입장에서 보면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것도 얼굴도 못 생기고 나이 많이 먹은 여자를 좋아 하다니 질투가 났겠지.

그래서 명성황후는 엄상궁을 궁 밖으로 쫓아낸다.

그 때 엄상궁의 나이 32세

지금은 얼마 되지 않은 나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인생 50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인생의 반 이상을 산 나이다. 지금 나이로 환산 해 보면 40이 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가부장적인 권위가 있었다고는 하나 명성황후가 고종의 총애를 받던 여자를

내 쫓은 것을 보면 여자의 파워도 막강했다고 생각된다.

하여튼

엄상궁은 궁에서 쫓겨나 다시 궁으로 돌아갈 날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1895년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사건이 발생한다.

일제가 남의 나라 왕비를 죽이고 고종과 순종을 볼모로 하여 조선을 지배하려 한다.

엄상궁 입장에서 자신의 최대의 라이벌 그리고 자기가 함부로 못하는

딱 한 사람인 명성황후가 없어졌으니 기다리던 절호의 찬스가 제대로 온 것이다.

자신의 가장 두려운 상대.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딱 한사람 그가 없어졌다.

이 기회를 그냥 지나갈 엄숭궁이 아니다.

엄상궁은 명성황후가 살해된 지 5일만에 입궁을 한다.

도도하게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이제 엄상궁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일본마저도 어떻게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고는 고종 곁에서 다시 고종의 두뇌로 자리를 잡는다.


[구러시아공사관에서 본 공원]


고종으로서는 일제에 의하여 감시 당하고 왕이면서 왕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것

그리고 왕비 시해사건으로 자신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 지도 모른다.

왕으로서의 역할을 못하는 것도 싫었고 더욱이 자기의 부인을 살해한 일본이 더더욱 싫었겠지. 그래서 엄상궁이 덕수궁을 탈출 할 것을 건의를 한다.

그리고 엄상궁을 믿는 고종은 엄상궁에게 맡기기로 하였겠지.

그래서 그 때부터 아관파천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한 여인에 의하여.

궁에 다시 돌아와 첫 번째 프로젝트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켜라.

목숨을 건 대 모험. 일제에 발각되는 날이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고

성공하면 고종의 아내로 들어가 통치의 최고의 위치로 올라

나라의 정치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

물론 자신을 믿는 고종이 뒤에 있다.

그 듬직함.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는 탈출을 위한 모략을 펼친다.


[구러시아공사관 앞 잔디 언덕]

매일 두 개의 가마로 궁을 출입을 한다.

그리고는 궁을 지키는 궁 졸들에게 수고한다고 수고비를 듬뿍듬뿍 준다.

그리고는 가마를 타고 임금님 있는 곳까지 간다.

원래 궁 안에서는 임금님 이외에는 가마를 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궁 안으로 버젓이 가마를 타고 드나드니 사람들의 소문은 어떡했을까?

오만 방자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그 것이 다 술수 였다니

- 3편에 계속 -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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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러시아공사관 내가 한국 사람 맞나?

토요일 오늘 고등학교 동기들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산에 가기로 한 날이다.

그런데 회사에 일이 있어 산에 가는 것 포기

회사에 출근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해서

구 러시아 공사관이나 다시 가보자.

blog에 러시아 공사관을 접근해서 보았으면 하는 cogen님의 생각도 나고

나도 다시 한 번 그 곳에 가보고도 싶고.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니



흥국생명 빌딩

아래 지하에 씨네큐브 광화문이 있는 빌딩

뒤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구 러시아공사관 들어가는 입구는

5월의 푸르른 녹음으로 진한 푸른색이다.


전경이 보초 근무를 서고 있다.

아래에 대기하던 전경들은 다 오늘 집회가 있어

출동 했는지 없고.

전경에게

구 러시아 공사관 좀 사진 좀 찍으면 안될까요?

"여기 들어가시면 안되는 데요"

"아 미 대사관은 안 찍을 거고 구러시아공사관만 찍을 거예요"

"그래도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신분증을 달래서 신분증까지 보여 주었다.

안 된단다.

그럼 신분증은 왜 보여달라고 한거야?

완강하게 출입을 막는다.

오늘은 미국 반대 시위 때문에 안 된다고

다음에 다시 오라고

그리고 사진을 찍으려면 밖에서 찍으라고

밖에서는 나무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이 남의 땅도 아니고

우리나라 땅에 마음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개인 소유 땅도 아니고 구러시아공사관이라고 표지판도 떡 하니 붙여놓고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가 있는 곳을 저렇게 방치하다니

100년이 흐른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우리나라는 누구의 땅인가?

미대사관도 덕수궁 자리에 남의 나라 궁궐 안에 있으며

사실 덕수궁도 경운궁으로 그 이름을 찾아야 한다.

덕수궁이란 왕위를 넘긴 선왕이 거처하는 보통명사라고 한다.

고유명사는 경운궁이 맞는 다고.

그 궁궐 우리나라의 궁궐근처에도 못 가게 막고 있으니.

그렇다고 그 곳이 군사적으로 아니면 정치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으로

꼭 들어가면 안 되는 출입통제 지역이지도 아닌 곳을



구러시아 공사관

사적 253호

설계자는 러시아 토목기사 사마틴으로 추측된다.

본관은 한국전쟁때 파괴되었고 현재는 3층 규모의 탑만 남아 있다.

[중략]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탑 부분과 지하층 일부만 남았었는데 1973년 현재와 같이 복원되었다.


표지판에 이렇게 쓰여있다.

미대사관이 옆에 있다고 구러시아 공사관에 접근도 못하게 하다니.

우리나라의 주권은 있는 것인가?

할 수 없지

앞으로 가서 다시 시작하자.

앞으로 가니 앞에서 지키는 전경이 있다.

"잠간 저 구러시아공사관만 찍으려고 하는데요"

"안되는데요"

"미대사관은 안 찍고 구러시아대사관만 찍으려고요"

"구러시아공사관만 찍으셔야 되요"



가까스로 구러시아공사관 앞쪽 길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사진을 찍다 보니 초등학생들이 견학을 왔나 보다.

들어가려 하니 전경이 앞을 막는다.

"저기 아저씨도 들어갔는데 왜 못 들어 가게 하세요"

나 때문에 들어온다.

그럼 여기까지 와서 우리나라 역사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들어가게 해야지 군사분계선도 아니고, 폭탄이 장착된 위험한 곳도 아닌데

그리고 초등학생이 미 대사관하고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공사관 안으로 가까이 들어 가지 못하는 것은 이내 아쉽다.

다음에 다시 시도해 봐야지

- 제 2편에 계속 -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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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오늘은 쓸쓸히
정동에 나가 봤어

정동에서 덕수궁 돌담길로 말이야.

그런데 날씨가 참 쌀쌀하다.




이 나무가
520년 나이를 먹은 회화나무라고 하지
둘레만 4m가 넘는다고 해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서인지
쇠기둥으로 버티고 있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회화나무.
조선시대 서울을 지금까지 보고 있는 회화나무야.
회화나무 너는 알겠지.
지금까지의 변화의 속도를
그러나 말없이 묵묵히 서있구나.
늙은 몸을 쇠기둥에 의지한 채





앞에
난타 전용극장이 보인다.
난타 공연을 하는 바로 그 극장이야.
사물놀이 리듬을 소재로 드라마화한 Performance
한 번 보았는데 흥이 나지.
시간있으면 한 번 봐. 재미있어.
우리만의 흥이 아닌 세계적인 흥이 되어야 할텐데.
아프리카의 리듬은 세계적으로 유행이 되는데
왜 우리의 흥겨운 리듬은 세계화가 힘들까?
우리의 리듬은 외국인에게는 어려운가?
우리나라의 리듬도 재미있는 데.
내가 우리나라 사람이라 그런가?




안으로 들어가니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어
그 건물을 들어가려니
전경이 앞을 가로 막는 거야.
"어디가세요"
"아 저 건물 사진 좀 찍으려고요"
옆에는 전경들이 많이 서있었지.
미 대사관을 지키는 모양이야.
언덕위에 르네상스풍의 건물이 보이는 거야.
"아 저 건물이 뭐 예요?"
"저 건물은 구 러시아 공사관 건물입니다"
이 건물이 구러시아 공사관이래.
언덕위에 쓸쓸히 서있는
이 건물이 아관이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그래
아관파천의 그 아관이다.
슬픈 역사를 갖고 있는 곳
나라는 힘이 있어야 해.
이제는 힘이 곧 정의가 되었어.

전경에게 물었지
"그런데 왜 들어가면 안되나요 ?"
"아 그런 것은 아니고 이 옆에 통제 구역이 있어서요"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는 거야.


여기가 정동길이야.
날씨가 스산해서인지 사람이 없어.
정동극장안인데.
입구에 있는 전통찻집토담이 있어.
예스럽게 입구를 꾸며놓았단다.
들어가니 대형 벽화가 나를 반기고 있지.





나오면 서울시립미술관 들어가는 길이 보여.
전화 부스
이제는 모양만 전화기인 전화박스가 보이지.
이쁘게 만들어 놓았는데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그냥 전시품으로 생각하면 더 좋을 것 같아.
예술품으로 말이야.





서울시립미술관 매표소
미술관 답게 매표소도 특색있게 꾸며 놓았네.
입구에 들어서니
100 Yeras - 100 Chairs
전시회를 하고 있어.
미국의 대표적인 팝 아티스트인
Robert Indiana 개인전이라고.
팝아트
단어와 숫자 등으로 일산적인 이미지를
작품화 한다고
처음 보이는 단어가 LOVE





그리고 단순한 숫자 8 7 6
미국 최고의 팝 아티스트라고 해.
글쎄 팝아트?
팝아티스트?
우리 주위에 있는 기호로 작품을 만든다.
현대 미술 작품세계에 통하는 독창성
우리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스스로의 독창성을 갖고 그 것을 인정 받으면
되는데
스스로의 독창성도 갖기 힘들고
설령 독창성을 갖고 있다 손 치더라고
그 독창성을 누가 알아 주어야 말이지
그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야 그렇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에서 말이야
불확실성의 시대가 맞기는 맞는 것 같아.

나도 흉내를 내보까?
아무도 안 알아주어도.



매듭
누가 저 매듭을 풀겠는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매듭은
누가 또 풀어 주겠는가?
자신의 마듬은 자신이 풀어야 하는가.
아니면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주어야 하는가?
복잡한 문제다.
우리들 마음속에 매듭이 없다면 좋겠지만.
시시껄렁하지?


덕수궁 돌담길에 있는 포장마차
사람이 없어서인지 더 쓸쓸히 느껴져.
언제 시간있으면 저기서 소주나 한 잔 하자.

다시 돌아 올라오니
아까 보았던 그 건물에
무엇인가가 한다고 붙어 있네.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연극이 열리는 모양이다.
그래 인생은 아름다운거야.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 의무가 있는 거야.
인생은 아름다운 거니까.




작은 카페다.
A little Provence
오늘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닫았어.
문을 닫은 카페가 더 운치가 있어 보이는
것은 왜 일까.
그렇다고 영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고.
그냥 운치가 있다는 말이지.

친구야
잠시 시간을 내어 정동길을 둘러 보았어.

이제 집에 들어가야지.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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