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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1/9) 벼룩시장의 집시들

아침에 일어난다. 다리가 아직 안 풀려 아프다. 오늘은 조금만 걸어야지, 이 먼데까지 왔으니 그냥 집에 있을 수는 없고. 주인 집 아저씨가 로마에 벼룩시장이 있단다. 오늘하고 오전만 한단다. 오후에는 안 하니 오전에 일찍 가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추천한다. 같은 방에 있던 학생들은 다들 가고 회사 다니다 온 사람과 둘이 벼룩시장에 버스 타고 간다.

이 곳 시내 교통은 완전 자율이다. 버스, 전철이 모두 같은 표로 통용되고 우리 같은 버스카드는 없는 듯하다. 그리고 1회권이 한 번 타고 마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시간이 있다 그 시간 동안에는 얼마든지 탈수 있다. 그리고 1일 권도 있다. 우리도 1일권은 있는데. 그리고 표 개찰구가 엄격하지 않다. 자율적으로 탈 때 개찰구에 찍고 타면 된다. 그냥 타도 된다. 그런데 한 번 무임승차로 걸리면 50유로를 벌금으로 내야 한단다. 그러니까 50번을 타면 한 번은 검사를 한다는 통계 숫자가 나온다. 그런데 나는 50번이 안되어 그런지 한 번도 검사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이 나라 사람들이 모두 표를 사고 타는 지 그냥 타는지는 모르지만 시스템이 잘 운영된다. 돈 내고 타니까 이 시스템이 운영 되겠지. 이 시스템은 내가 가 본 4개국이 동일하다. 우리나라에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 어떻게 될까? 과연 몇 %가 표를 사고 타고 다닐까? 이 곳에 와보니 우리나라의 교통요금 체계 시스템은 너무 삭막한 감이 있다. 표를 안 넣고 들어가려면 삐 하고 문이 닫히고, 표 넣은 사람만 들어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고. 하여튼 우리나라는 답답한 교통요금 체계이다.

벼룩시장에 내렸다. 우리나라 남대문시장 같은 곳 사람이 무척 많다. 입구에서 보니 그리 커 보이지가 않는다. 입구에 들어서니 집시 꼬마 애들이 갑자기 달려든다. 깜짝 놀라 뿌리치고 도망치듯이 피한다. "저리가 !!!!"


잘 못하면 소지품이 없어진다는 얘기를 들어서. 특히 벼룩시장에는 사람이 많으니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왔지. 어찌되었든 위기는 모면했다. 여행 오기 전에 준비물 중에 알람 계산기가 있어 그것을 가져오려 했는데 전날 확인 해 본 결과 고장이 나서 미처 못 가져와 불편했는데 이번에 알람시계나 하나 사야지. 초입에서 물어보니 3유로 달란다. 비싸다고 하니 더 깎아 줄 것 같다. 구경 먼저 하고 천천히 사기로 하고 한 바퀴를 돌려고 안으로 들어 갔는데 겉에서는 얼마 안 되는 것 같더니 가도가도 끝이 없다. 이렇게 클 수가. 물건 값 물어보고 하면 영어가 안 된다. 우리나라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적어도 3개 국어를 구사하는데 (한국어,일어,영어) 우리 상인들보다 고객 마인드가 부족하다. 자기나라 말만 사용하니.

우리나라 남대문시장 같이 옷이 주류이다. 어디 가나 의식주의 의가 제일 중요한가 보다. 옷값도 우리나라나 거의 비슷하다. 청바지가 3,4만원선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이다. 외국인들도 무척 많다. 시계 있는 곳에서 여기저기 물어보니 5유로까지 달랜다. 여기는 부르는 것이 가격이다. 한참을 돌아 다니다가 한 곳에 가니 3유로 달랜다. 중국계다. 그냥 거기에서 샀다. 중국계 아줌마가 사용법을 설명해 주며 기능을 자랑한다. 시간이 되어 알람이 울리면 처음에는 작게 울리다 조금 지나면 소리가 점점 크게 난다고. 시장이 너무 커서 가다가 돌아서 가려고 하니 왔던 길을 모르겠다. 그냥 큰길로 나가자. 큰길에 나가 물어서 버스를 타고 다시 역으로 왔다. 같이 동행했던 청년이 이태리 왔으니 스파게티를 한 번 먹어봐야 하겠다는 거다.

같이 먹기로 하고 역 근처의 스파게티 전문점으로 들어가 스파게티를 시키고 커피도 같이 시켰다. 스파게티 맛은 별로 맛이 없다. 내 입맛에 안 맞는다. 점심을 먹고 오늘은 스페인광장 부근을 보기로 하고 지하철을 탄다. 아까 구입한 버스표가 아직 시간이 유효하여 그 버스표로 전철을 타고 스페인 광장 에서 내린다.

스페인광장 정면에 명품 샵 들이 죽 좌우로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구찌 출입문에 서 있다. 뭐하나 보니 안에 못 들어가고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다. 아니 매장에도 맘대로 못 들어 가나. 좀 있으니 종업원이 나와서 문을 열어준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죽 들어간다. 옷 구경하는 것도 줄 서서 기다리다 들어가서 한다니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간다. 내가 내 돈 내고 옷 사는 것도 줄 서야 되나.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소이다. 아이스크림장사가 있다고 하더니 마차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장사가 없다. 겨울이라 들어갔나 아니면 원래 없나. 아이스크림가게에서 파는 것인가. 유명한 아이스크림가게가 주변 상점에 있다. 별로 아이스크림 먹을 생각이 없다. 구걸을 하는 할머니가 보인다. 아침에 점심에 먹을 거라고 역 슈퍼에서 빵을 사서 들고 다니던 것이 있는데 점심에 그 천연과 스파게티를 먹어 빵을 먹을 생각이 별로 없어 어떻게 처치할 까 하다가 그 할머니를 보고 할머니에게 주니 얼른 받아 뒤로 숨긴다. 맛있게 드십시오.

트레비 분수로 간다. 골목을 꼬불꼬불 사람들에게 물어 간다. 드디어 트래비 분수다. 사람들이 돌아서서 동전 던지느라고 여념이 없다. 판데온을 물어 물어 찾아간다. 거의 골목 골목 숨어 있다. 미로 속을 헤 메이다가 문득 나온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 있다. 판데온 천정이 뚫려 있다. 비가 와도 빗물이 안 들어 오게 설계가 되어 있단다. 비나 한 번 와 봤으면 진짜인가 확인하게. 그러나 비가 안 온다. 그런가 보다 할 수 밖에 확인 할 방법이 없다.

판데온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재미있다.


광장에서 아랍계 사람들이 싸운다. 어느 나라나 싸운 구경은 재미 있나 보다. 구경꾼들이 이태리어로 뭐라뭐라한다. 더 멋있게 싸우라는 얘기 같기도 하고 하여튼 조금 싸우더니 다른 곳으로 간다. 상황종료.


싸우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나보나 광장으로 간다.

나보나 광장도 골목골목 지나 갑자기 나타난다. 나보나 광장에는 사람 인물화 그리는 화가들이 많이 있다. 한 화가가 동양계 한 여자를 그리고 있다. 이쁘게 생겨서 그런지 그림도 잘 그린다.

나보나 광장에는 거리 공연들이 펼쳐진다. 공연을 하는 곳에는 여지 없이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같이 호흡하고 있다. 재미있는 풍경이다. 하나가 끝나면 다음에 준비한 사람이 공연을 한다. 손가락을 인형에 넣어 하는 공연이다. 재미 있다. 한참을 보다 숙소로 돌아 온다 .오는 도중에 큰 성당 같은 것이 있어 들어가니 많이 보던 조각상이 있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고 사진들을 찍는다.


로마에는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볼거리들이 많이 있다. 무심코 그냥 지나치면 모르는 그런 것들 숨겨진 묘미라고 할까. 로마만 천천히 보려면 일주일은 보아야 한다. 로마에서는 일주일이 안되고 떠난 사람에게는 다시 보자는 인사를 안 한다고 한다. 최소 1주일은 있어야 로마를 그래도 조금은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어찌되었든 나는 3일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다음 스케쥴이 있으니. 다리가 아직도 아프다. 어제 무리하지 말아야 했는데 오늘은 이만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저녁식사 후 주인 아주머님이 또 특별 회식을 한다고 나오란다. 매일 이벤트 하나씩을 하는 것 같다. 어제는 맥주 파티, 오늘은 아이스크림. 여기서 유명한 아이스크림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주신단다. 고마우신 주인 아줌마. 밤에는 겨울이라 그래도 밖이 춥다. 옷을 단단히 입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맛있다는 한마디 밖에 할말이 없다. 맛을 글로 표현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수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들어와 일찍 자리에 눕는다. 내일은 바티칸이다.

로마가 전성기 때에는 100만에서 150만까지 생활하였다고 한다. 지금이 250만이니 현재 인구의 반정도가 그 당시 생활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고대 도시치고는 엄청난 인구다. 현재와 같은 교통 수단도 없었고 있다면 마차를 타고 다녔을 텐데 지금도 마차는 다닌다. 무척 큰 도시였었음 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던 것이 4세기에는 3만 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 큰 나라의 흥망 세계를 이 곳에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지금의 초 강대국 미국은 향 후 어떻게 될까? 계속 초 강대국으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다른 나라에게 초강대국의 자리를 넘겨 주고 후퇴를 할 까? 현재로 보아서는 영원할 것 같지만 앞으로의 앞날을 누가 알까? 그러면 그 뒤를 이을 나라는 우리나라(?) 중국(?) 글쎄 두고 봐야지.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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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 (1/10) 바티칸 천지창조

바티칸은 일찍 가야 한단다. 워낙 사림이 많아서 줄을 많이 서기 때문에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그리고 가이드 투어를 권장한다고, 너무 많아 설명을 듣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는 것이 많다고. 그런가 보다 하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어제 전철을 한번 타보았으니 이제는 서툴지 않다. 전철 옆에 온통 그림이다. 외국 벽에 그려져 있는 둥근 그런 그림 이 곳은 벽화가 발달 되어 있어 이렇게 그림을 그려 놓았나 내 눈에는 낙서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침 8시경 역에서 타는 전철은 무척 혼잡하다. 첫 번째 오는 전철은 사람이 많아 못 타고 두 번째 오는 전철을 가까스로 탄다.


이러한 전철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이 생각 났다. 전철을 타고 가만히 보니 옆에 한국에서 가족이 여행 온 팀이 보인다. 4인 가족이다. 무척 복잡한 전철 안에서 갑자기 한국말이 들렸다. 소매치기가 남편주머니를 소매치기하는 장면을 잡은 것 같다. 소매치기는 남편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손에 아무것도 없다는 손짓을 하고 유유히 사라지고 남편은 주머니를 확인하고 버스 표하고 몇 개가 없어졌나 보다. 천만다행이지 중요 것을 잃어 버렸으면 어떡할 뻔 했나. 조심하여야 할 동네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려야 할 곳에 다 왔다. 얼른 내려 사람들 틈에 끼어 바티칸으로 올라 갔다. 중간에 이정표가 있는데 오른 쪽이 바티칸 박물관 같았다. 오른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일찍 올걸 하는 후회가 들었으나 어찌하겠는가. 그런대로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빨랐다. 한국인 관광객도 보였다. 가이드가 이어폰을 나눠주고 있었다. 단체로 가이드 투어하는 팀이다. 나는 종교도 없고 그냥 혼자 보기로 하고 들어간다. 출입구에서 레이져로 짐 검사를 한다. 레이저 통과대를 통과하고 검문검색을 끝나고 들어 간다. 입장료 12유로.

무척 크다. 조각상의 인상이 다 틀리다. 인상을 하나씩 뜯어 보는 것이 재미있다. 특이한 인상은 카메라에 담고 실내라서 잘 나올지 모르겠다.


노 후레쉬로 찍어 약간만 흔들리면 안 되는데 그래도 할 수 없다. 삼각대를 안 가져 왔으니. 그냥 자세를 바로잡고 찍을 수 밖에. 벽에 천장에 온통 그림들이다. 천장의 벽화는 엄청나다. 어떻게 저 많은 그림들을 그려 놓을 수가 있었을까? 한참을 가도 천지 창조가 나오지 않는다. 얼말를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그 곳에서 지키는 아저씨가 노포토 노포토 한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말이다. 그 큰방에 사람들이 가득히 서서 구경하고 있고 그 방 벽쪽에는 한 줄로 벽을 따라 의자가 있다. 의자에도 앉을 틈이 없다. 서서 모두 고개를 들고 있다. 천정의 벽화를 보려고 고개가 아프다. 미켈란젤로가 저 것을 그렸단다. 무척 사실적이다.

인터넷에서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일을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작업의 프로그램을 짜고 거기에 따라 일을 진행해나갔다.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해나가는 고된 작업이었다. 이로 인해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혼자서 4년 만에 이 대작을 완성하였다.

이 천장화는 성서의 〈천지창조〉의 순서와는 반대로 노아에 관한 3가지 이야기, 즉 입구 쪽에서부터 그려졌는데, 완성까지는 4단계를 거쳤다. 첫번째 단계는 2개의 곡면 벽화에 그린 3가지의 노아에 관한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으로 1509년 9월 15일에 완성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와 낙원추방〉과 〈이브의 창조〉, 4명의 나체상, 두 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0년 8월에 완성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아담의 창조〉 〈하늘과 물의 분리〉 〈달과 해의 창조〉 〈빛과 어둠의 창조〉의 4가지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 5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1년 1월과 8월 사이에 완성되었다. 네 번째 단계는 나머지 모든 원형 벽화로 같은 해 10월부터 1512년 10월 사이에 완성되었다.

그려나간 순서에 따라 화면은 점점 단순화되어 가는데, 이것은 높은 곳에 그려지는 천장화의 특수성을 미켈란젤로가 차츰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림은 1512년 완성되어 같은 해 만성절인 11월 1일 제막식을 가졌다. 그후 500여 년 동안에 이 벽화는 여러 차례에 걸쳐 덧칠과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다. 1982년에는 일본의 한 방송사의 후원으로 최첨단 기법을 동원한 복원작업이 9년에 걸쳐 실시되어 그림을 덮고 있던 때와 후대에 이루어진 덧칠이 제거되어 본래의 색채와 형태가 되살아났다

- 인터넷에서

그리고 산 피에타 성당을 들어 갔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간다. 무언가 하고 뒤에 서서 같이 들어가려 하니 입장권을 팔고 있다. 줄에 밀려 입장권을 사서 뭔지도 모르고 들어간다. 6유로 지출. 엘리베이터를 탄란다. 타라니까 타야지 나도 돈 냈으니까? 꽤 많이 올라 가더니 다시 내리란다. 일행들이 내려서 걸어 올라간다. 같이 따라 할 수 밖에, 나도 그 들을 따라 간다. 좁은 곳으로 해서 한참을 올라간다. 올라가도 끝이 없다. 다리도 아픈데 계속 올라가야 하나. 돈 냈는데 여지 없이 떠오르는 본전 생각 나도 끝까지 올라 갔다 하도 좁아서 이곳은 벽 청소를 할 필요가 없겠다. 관광객들이 옷으로 다 닦고 올라가고 있으니. 다 올라가니 성 피에타 성당 옥상이다. 무척 높다. 아래를 보니 현기증이 안다. 올라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티칸 박물관이 다 보이고 아래 집들도 자 보인다.


날씨도 기가 막히게 맑다. 한 참을 구경하고 나왔던 반대방향으로 다시 내려간다. 다 내려가서 피에타성당에 들어 갔다. 오른쪽에 피에타 조각이 있다. 성모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인데 성모마리아가 무척 젊게 조각을 해 놓았다. 미켈란젤로가 25살 때 만들었다는 조각품 대단하다. 바티칸을 보고 나오니 배가 출출하다.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걸어 가다 보니 빵집에 그래도 사람들이 많다.

처음 가 본 곳에서 음식점을 고르는 법.

사람 많은 곳을 선택하라.

사람 많은 빵집에 들어가 맛있게 생긴 빵과 음료수를 시켜 먹어보니 맛이 있다. 탁월한 선택 7.5유로 싼 값은 아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10,000원 정도 그래도 잘 먹었으니 됐다. 식사 후 천천히 천사의 성으로 걸어 간다. 이 곳은 들어가는 곳이 아니고 주위에서 건물만 보면 된다고 한다. 가는 길에 강가 벤치에서 산타루치아를 기타로 연주하고 있다 그런데 자주 틀린다. 연주를 잘 하지도 못하면서 나와서 클래식 기타를 치고 있으니 가까이 가보니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앞에 돈 통은 놓여져 있다. 앞으로 연습 많이 하라는 의미에서 주머니에서 잔돈을 꺼내 돈 통에 넣어 주고 사 진을 한 장 찍는다. 못 치는 기타지만 그래도 이태리 와서 고등학교 때 배운 산타루치아를 강가에서 기타연주로 들으니 기분이 묘해진다. 여기가 이태리 맞다.


그 예술인을 뒤로 하고 천사의 성에 가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성천사의 다리를 건너 다시 스페인광장 부근으로 간다. 어제와 같이 사람들이 많이 나와 계단에 앉아 있다. 어제 앉아 있던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 사람들은 오늘은 다른데 가서 앉아 있겠지.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그래도 저녁 해가 넘어 가려 한다. 오늘도 주인 아줌마가 이벤트를 마련했다. 불고기에 와인 맛있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아픈 다리를 주무르고 내일은 나폴리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야지

일본은 기독교 신자가 1%가 안 된단다. 아마 천황이 있어 그 천황이 신적인 존재이므로 기독교가 일본인들에게 파고 들지 못하는 이유도 있겠다. 우리나라는 엄청난 기독교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다신교를 갖고 있었던 로마가 그렇게 박해를 하던 기독교가 이렇게 까지 퍼질 수 있었다니 놀랍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로마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목욕탕이 무척 발달하였고 그 목욕탕은 남녀 혼탕이었다고 한다. 남녀 혼탕이었느니 서로 벗은 모습을 보는 자체가 일상화 되어 있었을 테고 쑥스럽지도 안았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그러한 이유로 남녀의 조각상이 자연스럽게 조각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목욕탕에 주로 있었다고 한다. 목욕탕이 무척 호화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기독교가 들어 오고 기독교가 로마에서 종교로 인정 받으면서 남녀 혼탕도 없어지고 목욕탕에 있던 그 수많은 조각품들도 다 없어졌다고 한다. 성서에 나오는 에덴의 동상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워하며 옷을 입기 시작한다는 그 이야기의 한 부분에서 발단이 되었겠지. 우리나라에 유교가 들어 오면서 남녀유별이라는 유교사상과 같다고 할까. 그 조각품들 중에 남은 것만이 지금 볼 수 있는 조각품이다. 그리고 로마 유적들은 성당을 건축하기 위하여 뜯겨져서 성당의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기독교가 로마에 끼친 영향은 문화재 보호 측면에서 보면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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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차 1/11일 폼페이의 만찬

오늘은 나폴리에 가다.

율리시즈가 트로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가는 길에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 파도에 휩쓰려 표류하는 과정에서 파르테노테는 율리시즈를 노래로 유혹하려 하였으나 율리시즈는 그 노래를 듣고 싶어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고 선원들의 귀는 밀납으로 막아 그 유혹에서 벗어 났다고 한다. 그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율리시즈를 유혹하지 못한 파르테노페는 자신의 아름다운 노래가 율리시즈를 유혹하지 못하여 자살하였고. 그파르테노페가 묻힌 곳이 바로 이 나폴리다. 과연 어떠한 노래를 불렀을까? 그 후세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들이 오 솔레미오나, 산타루치아 같은 아름다운 노래일 것이다. 이러한 노래들이 파르테노페가 부른 노래의 영향을 받아 아름다운 노래로 탄생하지 않았나. 그 파르테노테의 영어발음이 사이렌이라 한다. 사이렌은 조녀라고 하는 데 하반신은 새고 상반신은 사람이라 한다. 사이렌 하면 민방위 훈련시 나는 소리가 아닌가. 사이렌 소리는 우리에게는 전혀 아름답지 못하고 긴장감을 준다. 이는 그 사이렌의 노래가 아니고 사이렌이 나타나니 경고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하여튼 기원전 7세기에 그리스 사람들이 파르테노테가 묻힌 해변가에 도시를 세웠고 그 옆에 새로운 도시를 세웠는데 그 도시가 바로 현재의 나폴리고 그 나폴리를 이 곳 이태리 사람들은 아직도 파르테노테의 도시라고 한다고 한다.

민박집 아줌마가 다음은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나폴리 간다고 하니 민박을 소개시켜 주겠단다. 실은 민박을 안하고 유스에서 자려고 했는데 유스는 좀 멀다. 소개 시켜 준다니 좋다고 하고 전화번호를 적어준다. 전화번호를 갖고 아침을 먹고 같이 있던 룸메이트 보다 일찍 역에 나갔다. 유레일 패스 4개국 6일사용 분이기 때문에 로마-나폴리 구간은 유레일 패스를 안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유레일 1일에 40유로 정도 로마-나폴리 구간은 그것에 반밖에 안된다. 당연히 2등석 끊어서 가야지. 2등석을 끊고 슈퍼에 가서 물 한 병 사고 슈퍼가 무척 싸다. 기차에 올라 탔다. 잠시 후 같은 민박에 같이 묵었던 행자들이 보인다.

이 기차 타셨어요

같이 앉아 가자


좌석이 마침 6개 자리이고 방금 탄 일행은 5명이다. 내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남은자리가 5개 딱 맞다. 우리는 이래서 같은 일행이 되어 하루의 재미있는 여행을 시작한다. 한 분은 초등학교 선생님, 다른 두 명은 장차 좋은 교사가 될 여학생, 또 다른 두 명은 남자 대학생 2월에 한 명이 군에 간다나 그리고 그들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나 이렇게 혼성 6인조 여행단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우리는이라는 단어가 맞는다. 갑자기 검표원이 와서 표를 보잔다. 나머지는 다 유레일패스이고 나만 그냥 차표이다. 내 표를 보더니 뭐라 뭐라 한다. 옆에 있는 학생들이 기차탈 때 개찰구에서 안 찍고 탔으니 20유로를 벌금으로 내라는 이야기란다. 아참 내가 기차 탈 때 처음 타는 거라 그 방법을 몰랐다. 우리나라 같이 그냥 타면 입구에서 개찰하는 아저씨가 다해주는 줄 알았다. 20유로 벌금 돈도 얼마 없는데 벌금이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유레일 패스 쓰는 건데 일단 검표원에게 사정을 했다.

저는 여기 처음이고요, 기차를 처음 타서 몰랐어요. 미안합니다.

또 이태리어로 뭐라뭐라한다.

미안합니다. 처음이라 몰라서

알았다고 하고 그냥 간다. 나도 고맙다고 인사한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가며 나폴리역에 도착한다. 나폴리역에 내려서 일행들이 나에게 민박집에 전화해 보라고 성화다. 나는 로마에서 산 공중전화 카드로 민박집에 전화를 한다. 받지를 안는다. 계속 신호음만 간다.

안 받는데 어디 갈꺼야

폼페이 갈려고요

잠깐 짐 좀 맡기고 같이 가지

역 직원에게 코인라커가 어디예요

못 알아 듣는다. 할 수 없다. 바디 랭귀지로 해야지. 배낭을 가리키며 짐 보관함에 넣고 키로 잠그는 시늉을 하니 그제서야 알겠단다. 왼쪽으로 해서 쪽 가라고 손짓으로 가리킨다. 고맙다고 그라체 하고 가리 킨 곳으로 가보니 무인 코인라커가 아니고 유인 짐 보관소이다. 아 그래서 못 알아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짐을 맡기고 와보니 로마에 올라갈 시간표를 확인하고 있다. 우리는 폼페이로 가는 전철표를 하나씩 끊어 전철에 오른다. 이 노선은 사철이라 유레일 패스가 안 된단다. 폼페이역에 도착하여 다 같이 내린다. 역에서 간단한 지도를 구하고 나오니 바로 옆에 우측으로 폼페이가 보인다.

왼쪽에는 캠핑카 세워 놓는 곳이다. 캠핑카 타고 여행하면 좋을 텐데. 표를 끊는다. 표를 끊으니 폼페이 영어 안내 책자를 하나씩 준다. 이 곳 폼페이도 가이드와 같이 여행하여야 하는 대표적이 곳이다. 우리는 안내 책자와 우리가 갖고 있는 여행 책자를 총동원하여 해석하고 정보 교환하며 이 곳 저곳을 보며 간다. 영어 해석 오래간 만에 해보는 거라 머리에 쥐가 난다. 이 정보 저 정보 조합하니 그래도 어느 정도 유적지를 따라 간다. 안내 책자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여 인터넷에 올려 놓으면 참 보기 좋을 텐데. 우리나라 여행객의 폼페이 이해를 위하여. 대극장을 거쳐 소극장에 다다른다. 무척 좋은 날씨다. 아침에는 구름이 끼고 날씨가 우중충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하늘이 깨끗이 갰다. 한참을 돌아다니고 안 돌아가는 머리 굴리며 번역을 했더니 배가 출출하다. 마침 여 선생님이 빵을 가져와서 그 빵을 소극장 매 위 자리에서 먹으니 맛이 무척 좋다. 이 것이 폼페이 최후의 만찬이다. 원형 소극장은 그 모습이 잘 보전되어 있으며 생각보다 상당히 크다. 야외 소극장이며 음악이나 연극 공연을 한번 보고 싶다.


우리는 기차시간 관계로 폼페이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둘러 폼페이를 빠져 나온다. 아쉬움이 남는 폼페이 다음에 오게 되면 더 공부를 하고 와야지. 폼페이 나오는 분은 뒷문이다. 사람들이 죽 나간다. 같이 따라 나오니 폼페이 밖이다.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열대수들이 보인다.

우리는 열차역에 가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반대편에 있던 폼페이 애들 둘이 자기를 찍으라고 포즈를 취한다. 한 장을 찍으니 좋단다. 자기들 줄 것도 아닌데.


기차를 타고 다시 나폴리로 돌아온다.

나폴리에 와서 나는 다시 민박집에 전화를 한다. 전화를 이제 받는다. 방이 있느냐니까 방이 있단다. 잠시 후 다시 전화를 하기로 하고 우리들은 나폴리 시내로 그유명하다는 핃\자를 먹으러 간다. 유럽 안내 책자를 현지인에게 보여주며 장소를 물으니 아주 친절하게 안내를 한다. 그 책에 나와 있는 곳은 오늘은 영업을 안하고 그 보다 맛있는 집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우리는 혹시 잘못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서 그 아저씨를 따라간다. 골목을 지나 작은 피자집 한집을 안내하고 사라지고 우리는 그 피자집에 들어갔다. 사람도 많고 벽에 있는 그림 분위기가 오래된 피자집은 맞다. 그런데 피자 먹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피자 한 판씩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피다 한 판을 혼자 다 먹을 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 우리는 제일 큰 Large로 세 개의 피자를 시켰다. 조금 있으니 우리가 있던 옆 홀에서 메인 홀로 자리를 옮겨준다. 피자를 굽는 화로가 보이는 피자 굽는 아저씨가 직접 화로에 피자를 넣었다 꺼낸다. 잠시 후 우리에게 맛있어 보이는 피자 세 판이 나왔다. 피자를 보니 피자가 무척 얇다. 종이 같다. 아까의 피자 먹는 광경들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이러니까 혼자 그 큰 피자를 다 먹지, 우리나라 같았으면 두 쪽만 먹어도 배가 불러 못 먹는데. 맛이 특이 하지만 맛있었다. 처음 먹어 보는 정통 나폴리 피자.


이렇게 해서 나폴리에서의 하루가 지나간다. 우리는 나폴리를 작게 한 바퀴 돌아 다시 역으로 돌아온다. 일행이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한다. 나는 내가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니 로마로 떠나는 것을 것을 것을 보고 가겠다고 일행이 로마로 떠날때까지 같이 대합실에서 같이 있다가 일행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표 파는 곳으로 와서 내일 베네치아행 쿠셋을 예약을 하고 역에서 민박집에 전화를 한다. 약국 앞에 있으란다. 픽업하러 온단다. 약국 앞에 기다리고 있으니 이 곳에 있는 이태리 사람들이 다 불량해 보인다. 내가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나. 한참을 기다리니 어떤 아저씨가 온다. 대충 보면 아는 가 보다. 나에게로 와서 말을 건다. 맞는다고 하고 따라간다. 나폴리 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집에 들어가니 손님도 없다. 우리 방에는 학생 하나, 그리고 다른 방에는 여선생님 한 분이 있단다. 아직 안 들어와 나와 학생 단 둘이다. 학생이 컴퓨터를 열심히 하고 있다. 민박집 인터넷 사이트를 정리 하고 있다. 민박집 부탁으로. 그런데 그 학생이 오늘 사기를 당했단다. 나폴리에서. 민박집에 오는 길에 길에서 핸드폰,디카,캠코더 이렇게 세가지 물건을 파는 아저씨가 있어 처음에 300유로 달라는 것을 100 유로까지 깎고 돈을 주고 나니 직접 배낭에 넣어 주겠다고 해서 배낭에 넣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 하고 집에 와서 배낭을 풀어 보니 돌 맹이 세가 들어 있단다. 기가 찰 노릇이다. 직접 보았는데. 민박집 아저씨가 옛날에 경험담을 들려 준다. 담배를 샀는데 가져와서 풀어보니 못 박힌 스티로폼이 들어 있었다고 무게를 맞추기 위하여 못을 박아 놓은 스티로폼을 넣은 것이었다. 나는 스팅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났다. 처음 도입부에 로버트 레드포드가 지나가는 사람의 돈을 사기치는 장면. 귀신 같은 솜씨다. 그 학생은 이곳이 마지막이라 이제 집으로 돌아가니 그래도 좀 났단다. 처음 같았으면 기분이 상당히 상해서 여행할 맘이 안 났을 텐데. 그 학생은 저녁에 출발하고 나는 민박집 아저씨에게 나폴리 여행정보를 물어보니 카프리보다는 쏘렌토 아말피가 났단다. 추천은 따르는 것이 좋다. 현지인의 추첨은 더욱이나 이틀을 있으면 두 곳을 다 가보겠는데 하루 박에 없으니 하나를 포기 할 수 밖에. 카프리를 포기하고 돌아오라 쏘렌토, 아말피를 선택하고 가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을 듣는다. 아주 여행객을 위하여 복사를 해 놓았다. 그 복사물을 챙기고 아저씨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조선족이란다. 한 때 사업상 한국에 들어와 불법체류하며 공사판에서 일도 했단다. 공사판에서 먹고 자고 저녁에 정리 하고 아침에 공사 시작을 위하여 일찍 일어나 깨끗이 작업준비 해 놓고 아마 공사현장에서 좋아했던 것 같다. 미리미리 해 놓는데 안 좋아 할 사람이 있겠나. 그 당시 돈을 많이 벌었단다. 한 달에 백만 원 이상씩 벌었다고 하니 그 당시 중국으로 생각하면 무척 큰돈이었단다. 그리고 이태리 와서는 고생을 무척 많이 했단다. 중국인 가죽 공장에서 일하는데 하루에 20시간을 했다고 한다. 중국 놈들은 무식하다. 한 달을 하고 나니 세수하는데 코피가 죽 흘렀다고. 지금도 이 곳 나폴리에 돈 많은 갑부 중에 중국인 많다고 한다. 이곳 나폴리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한다. 따뜻한 지역 사람이니 그런가 보다. 한참을 같이 이야기 하다 나는 내일을 위하여 방에 들어가 잔다. 내일은 아말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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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차 1/12일 쏠렌토의 할머님들

이제 다리도 많이 나아졌다. 오늘따라 일찍 깬다. 시계를 보니 06:00이다.

07:40 아침 먹고

08:11 분 전철을 타고 쏘렌토로 출발한다.

09:10 쏘렌토에 도착 쏘렌토를 간단히 한 바퀴 돌아 구경하니 상당히 깨끗하다. 더운 지중해 기후로 열대 식물들이 심어져 있고 날씨도 상당히 따뜻하다.


멀리 떠난 벗이여,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이탈리아 작곡가인 E.데쿠르티스의 작품

돌아오라 소렌토로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그 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그대를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아오라 이곳을 잊지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한 바퀴 구경하고 오니 포시타노가는 버스가 출발하고 없다. 아말피 가려면 포시타노까지 가서 갈아타고 가야 한단다. 그 곳에 서 있는 운전기사에게 문의하니 뒤 차란다. 뒤 차에 가서 물어보니 자기 차가 아니란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있을까? 여기 저기 물어보아도 아무도 답을 못한다. 현지 할머니들 다섯 분이 운전사에게 이태리어로 뭐라 한다. 뒤에 포시타노라는 단어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포시타노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 같다. 현지 할머니들도 버스를 못 찾고 왔다 갔다 한다. 내가 포시타노 가는 것을 눈치 챘는지 나에게 와서 뭐라 한다. 나는 알아 들을 수가 없으나 대충 뜻은 알겠다. 포시타노 가는 냐고 하는 것 같다. 대충 나도 포시타노 간다고 하고 그 할머니들만 따라 다닌다. 할머니들만 따라다니면 나도 포시타노 갈 수 있겠지 여기에 사시는 분들도 이렇게 버스를 못 찾는데 어떻게 내가 찾을 수가 있을까? 할머니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웃고 떠든다. 재미있는가 보다. 무려 1시간을 기다린 끝에 10:10분 할머님들이 차에 올라타며 나에게도 빨리 타라고 한다. 할머니들은 어디 할머니나 다 똑같은가 보다 푸근함이 느껴진다. 인생을 그만큼 많이 살아 인생에 대한 달관이라고 할까. 그 동안 살아온 역경. 할머님들 덕분에 무사히 버스에 탈 수 있었다. 버스에는 몇 명 없다. 아마 평일이라 그런 것 같다. 나와 할머니 5분, 외국인 2명 운전기사 포함 모두 9명이다. 운전기사와 할머니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큰소리로 이야기 하고 웃곤 한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다. 아말피로 가는 길은 무척 꼬불꼬불하다. 마치 우리나라 강원도 고개를 넘는 것 같다. 운전기사는 연신 크락숀을 빵빵하고 눌러댄다. 앞에서 오는 차에게 하는 신호이다. 차가 가니 비켜달라는 주의하라는 신호이다. 지중해 바다가의 깎아지른 절벽이다. 그 절벽에 집을 짓고 산다. 그것도 아주 예쁜 집들을 짓고 산다. 절벽을 깎아 밭도 만들었다. 포시타노에 도착한다. 여기서 차를 갈아 타야 한다. 포시타노에 왔으니 포시타노를 함 보고 가야지. 저 아래 한 참 아래 지중해 해변이 보인다. 터벅 터벅 걸어 내려간다. 아 제법 멀다. InterPositano 버스가 지나간다. 아 저 차를 탔어야 하는 건데. 얼마 안 되는 것 같아 걸었더니 무척 멀다. 동네는 한가롭다.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동네 사람들은 무엇을 해서 먹고 살까? 거의 한 시간은 걸어 내려온 것 같다. 길 가에 있는 가끔씩 있는 상점들을 구경하며 아래로 아래로 계속 내려간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없다. 크고 유명한 관광지 보다는 이렇게 조그만 마을의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훨씬 아기자기 하고 재미있다. 한 참을 내려가니 포시타노 동네 버스 종점이 보인다. 버스 타는 곳을 확인하고 마을 아래로 내려가 지중해 푸른 물에 손을 담과 본다. 깎아 지른듯한 절벽 그 절벽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위대함이 같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푸르디 푸른 지중해. 여름을 이런 곳에서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돈만 많다면. 다시 버스 정류장에 올라와 버스를 기다린다. InterPositano 버스 아침에 산 버스표가 180분 유효한 버스표다.

기사 아저씨 이 버스표 돼요?

그 버스표 안돼요

그럼 버스표 어디서 사요

나한테 사면 돼요

하나 주세요

버스에 타니 운전기사 아저씨가 직접 판다. 12:00 버스표를 사서 버스를 탄다. 좁디 좁은 골목길 차가 다닌 다는 것이 신기하다. 두 대가 간신히 비켜갈 수 있는 길 뱅글 뱅글 돌아 아까 차에서 내렸던 곳에 도착한다. 약 10분이 걸린다. 12:10분 도착. 다시 아말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여행이 계속된다. 이 곳은 일반 버스를 타고 절벽을 보는 것 자체가 바로 관광이다. 지중해와 어우러져 있는 절벽들 그리고 지중해 구름이 끼어 있고 그 구름 사이로 햇볕이 비추이고 왜 똑같은 바다인데 느끼는 감정이 이렇게 다를까?


옛날 캘리포니아 에서도 차 끌고 나가 보던 태평양도 우리나라 동해에서 보는 것과 그 느낌이 달랐었다. 똑 같은 태평양 바닷물인데. 바다는 그 보는 위치에 따라서도 다르다. 언덕 위에서 보는 바닷가에서 보는 바다. 내가 가장 아름답게 본 바다는 군대에서 저녁 해가 지고 보름달이 바다에서 떠오를 때이었다. 언덕에 앉아 본 바다 큰 바다가 호수같이 작게 느껴지며 바다가 금빛으로 물들며 보름달이 바닷물 위에 있을 때 그 보름달과 바다의 조화는 신비롭기만 했다. 여기서 이렇게 절벽에서 버스를 타고 가며 바다를 보는 것과 이 곳에서 며칠을 기거하며 체험하며 보는 바다는 다를 것이다. 밤에 보는 아말피의 언덕은 어떨까? 이 곳에서 며칠 머물다 갈 수 있었으면.

절벽에 지어 놓은 집들을 다 어떻게 지었을까 하는 생각. 절벽에 자재를 운반하는 길도 신통치 않은 것 같은데. 하여튼 내가 보기에는 이상한 애들이다. 절벽에 집을 짓고 사는 모습을 보니. 아말피에 도착한다.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동네이다. 인포메이션에 들어가 무료지도가 있는가 물러보았다. 무료는 없고 2.5유로 짜리 유료가 있단다. 너무 비싸 안 산다. 마을을 조금 올라가니 학생들이 학교 끝나고 나온다. 방학일 텐데 학교에 갔다 오나 날씨가 따뜻하니 다른 특별 활동이 있을 줄도 모르지. 마을은 깨끗하다.

나폴리와는 정반대다. 나폴리는 상당히 지저분했는데. 이 곳 아말피는 깨끗하다. 정류장에서 해변의 방파제 쪽으로 조금 가다 보니 해안에서 과일을 판다. 과일 도매상인가 보다. 과일을 실은 트럭도 몇 대가 있다. 외국인 나의 눈에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 곳에서 바나나를 하나 산다. 나도 그 사람이 가고 난 후 바나나를 하나 달랬더니 이태리어로 뭐라 한다. 도저히 못 알아 듣겠다. 동전을 꺼내 보여주니 알아서 가져가고 바나나를 준다. 그렇게 바나나를 하나 사서 방파제에서 바다를 보며 앉아 바나나를 까 먹고 있으니 바나나가 맛있다. 한가롭게 바닷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여유롭다. 모처럼 가져보는 여유다. 해변에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이고 바닷가에는 모래사장도 있어 모래사장도 걸어보고 겨울이라 바닷가의 배들은 묶여있다. 여름이면 모두 여행객들을 태우고 바다로 나가 여름을 만끽하고 있겠지. 우리나라 해변에는 고기 잡는 그물들이 있는데 이 곳에는 그물을 볼 수가 없다. 순수 관광용 인가? 이 여유로움을 조금 더 누려보자. 방파제로 올라가니 방파제 옆에는 마차에서 물건을 파는 난전이 있다. 사람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그런데 짐을 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계를 보니 오후 2시다. 아니 두 시에 영업을 마치다니 그러고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나. 아니면 집에 갔다 저녁에 다시 올까? 이태리 남부 사람들은 참 게으른 것 같다.


이렇게 아말피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나폴리로 오는 버스를 탄다. 전철로 갈아 타지 않고 직접 나폴리까지 오는 버스를 탄다. 고속도로로 해서 한 참을 달리고 있다. 달리는 버스에서 잠시 눈을 붙인다. 일어나보니 나폴리로 들어간다. 나폴리 역이 종점인지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나폴리 가리발디역을 지나쳐 한참을 가는 것 같아 물어 보니 벌써 지나쳤단다. 아이구 하고 내려보니 나폴리 항구다. 그 유명하다는 나폴리 항구 미항하면 나오는 나폴리 항구. 저녁 어스름이라 잘 보이지 않는다. 아주 밤이면 야경이라도 멋있는데. 이 때가 가장 어정쩡하다. 기왕 항구까지 온 것 항구 구경이나 하고 가자. 한국인 가족이 보인다. 배낭을 앞으로 맸다. 소매치기 조심하기 위하여 그렇게 매고 다닌다. 항구에 들어가니 배는 모두 떠나고 쓸쓸하기만 하다. 쓸쓸한 항구에서 여기 저기 기웃거린다. 사람도 없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나폴리역으로 돌아가자. 역에서 내려 숙소로 와서 저녁을 먹고 저녁 밤차 시간을 기다린다. 민박집에 새로 새 식구가 6명이 들어온다. 어제는 2명이 잤는데. 오늘 온 여행객은 경찰공무원이란다. 휴직을 하고 학생들 5명과 같이 유럽여행 중이란다. 왜 휴직을 했고 학생들은 또 누구인지 시간이 없어 물어보지 못했다.

어제 밤 같이 얘기를 했던 주인 아저씨가 PC에서 고스톱을 하고 있다. 고스톱이 한국 사람정서에 맞는 지 재미있는가 보다. 한국에서는 공사현장에서 잠깐 살아본 경험 밖에 없지만. 두 민박집을 보았다. 모두 조선족이다. 나폴리 아저씨가 어릴 때 같이 학교 다녔단다. 그런데 두 집 다 여자가 생활력이 더 강하다. 원래 유목민이 여자가 더 활동적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은 옛날에 몽고 지방 유목민의 후예들이니까. 그러니 그 피가 섞여 있을 수 밖에.아저씨가 고스톱이 안 된다고 하니 주인집 아줌마는 그 딴 것 한다고 핀잔을 준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벽을 보니 식사를 한 끼 더하면 식사 값을 내야 한다고 적혀 있어 주인 아저씨에게 돈을 주려고 물어 보니 그냥 가란다.

밤 차 시간이 되어 역으로 나간다. 처음 타는 쿠셋이다. 침대를 설치해 놓은 열차다 처음 타보는 것이라 궁금하기도 하다. 시간이 되어 기차에 오른다. 정식 침대 칸은 아니고 6인용 1 등석 좌석에 2층 침대 2개를 설치하여 타고 가는 것이다 물론 안에서 문도 잠글 수 있게 해 놓았다. 내 방을 찾아 가보니 이태리 노부부가 벌써 와서 자리를 잡고 있다. 내 자리는 2층이란다. 2층으로 짐을 갖고 올라 가자. 1층에 노부부가 탑승하고 그리고 나 또 반대편에 나이 먹은 아저씨 이렇게 4명이 다 찼다. 이태리 할머니를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젊고 아줌마라고 하기는 늙었고 하여튼 동양인 나와 같은 칸에 탄 것이 상당히 재미 있나 보다.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건다. 도통 이태리어는 알아 들을 수가 없어 대답을 못하나 그래도 그 할머니는 즐거운가 보다. 상당히 우호적이고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기차는 출발하고 얼마 있다가 승무원이 와서 물, 티슈, 슬리퍼 등 한 보따리 주고는 내 열차표를 회수해 간다. 분실 및 도난 우려가 있어 쿠셋은 열차표를 회수해 가서 내리기 30분전에 다시 갔다 준다고 책에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침대에 올라가 짐을 정리하고 있으려니 나에게 이태리 과자를 하나 먹으라고 권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먹는 것을 권하는 인심은 동일 한가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서 먹어보니 매우 짜다. 왜 이리 짜게 먹는지 모르겠다. 승무원이 나눠준 물과 같이 먹으니 먹을 만 하다. 어디를 가는 지는 모르지만 참 즐거워한다. 부부가 한 참을 웃고 떠든다. 무슨 말은 모르지만 그 들을 보고 있는 나도 즐겁다. 이 사람들과 같이 오늘 밤을 보내야 한다. 3명의 이태리 사람들 그리고 동양인 나 그렇게 4명. 할아버지 할머니 들과 같이 이 밤을 보내야 한다. 즐거워하는 그들을 보고 즐겁게 잠을 청한다. 이태리 사람들 하고 같이 있는데 아무 일도 없겠지 하는 안심이 든다. 이제 피곤하다 잠이나 자자. 나를 실은 열차는 베네치아를 향해 힘차게 달린다. 밖은 어둡다.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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