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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순환도로를 탄다.

월드컵 공원이 우로 보이고

이제 이 내부순환도로를 나가면 자유로다.

자유로 차들이 씽씽 달린다.

좌로 좌로 달리는 차들 사이로 들어간다.

경쾌하게 바람을 가르며 차가 달린다.

아들이 뒤창문을 열자 상쾌한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이 한 웅큼 차 안으로 들어온다.

시원하다.

차는 북으로 북으로 달린다.

이렇게 백두산까지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좌측에 설치되어 있는 철조망이 왠지 서글프게 느껴진다.

군에 있을 때 나는 동해안에서 해안 초병이었었다.

그 때 간첩의 침투를 막는 다고 그 아름다운 해안에 철조망을 치던 생각이 난다.

그 철조망을 치면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이 철조망을 걷느라고 더 많은

노력이 들어 가겠지.

일산 호수 공원 진입로를 지나간다.

아들 : 아빠 가는 곳이 아직 많이 남았으면 호수공원이나 가요?

아니야 얼마 안 남았어 조금 만 가면 돼

왼쪽으로 통일전망대가 보인다.

여기서 성동IC로 들어가라고 했지

고가도로 밑을 지나자 바로 성동IC가 나온다.

성동 IC로 나가니 헤이리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직진은 영어마을

좌측은 헤이리

좌회전 깜박깜박

좌회전을 하니 헤이리 1번 게이트가 보인다.

일단 들어가 보자. 조그만 멋있는 건물이 몇 채 있겠지.

그 속에 차를 대면 되겠지

일단 승용차를 몰고 마을로 들어 갔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헤이리는 진행형]

주차장도 안보이고 꽤 넓다.

아직도 공사중인 집들이 많이 보인다.

어디에다 차를 세우고 어떻게 보아야 할 지 모르겠다.

일단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



낯선 곳에 오면 처음으로 하는 것이 적응 훈련

적응만 되면 편해진다.

넓어서 그런지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차를 몰고기웃기웃 하다보니

9번 게이트가 보인다.


처음 들어 왔던 게이트가 1번게이트

이 곳이 9번 게이트

아 그러면 이 안이 전부 다 헤이리구나

[제 2편에 계속]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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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편에 이어



일제의 감시와 주도권 안으로 들어가

빠른 시간에 여자의 몸으로

그만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본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이었으니.

그리고는 자기 맘대로 행동한다.

일제도 맘대로 못하는 한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는 매일같이 궁 안으로 가마를 타고 드나든다.

처음에는 가마 안을 살펴 보았겠지만

매일 주는 수고비와 이미 얼굴을 잘 아는 입장에서

한참 뒤에는 가마 안을 살펴보는 것 없이 그냥 다녔다.

예나 지금이나 돈에는 약한가 보다.

그리고 안면 장사는 어느정도 봐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가마가 무사통과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마에 고종과 순종을 태우고 유유히 성문을 빠져나가 러시아공사관으로 간다.

그리고 한 참 뒤에야 일제는 알게 된다. 한 여인의 책략에 당한 것을

그 사건이 아관파천이고

그 공사관이 바로 이 구러시아공사관이다.

민족의 슬픈 역사가 묻혀 있는 곳.

그런데 아직도 그 슬픈 역사는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앞에는 사적이라고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돌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유리창은 깨어져 열려 있고



출입문은 누군가가 끼워 놓은 돌멩이가 아직도 문틈에 있고

벽들은 금이 가서 언제 어떡해 될지 모를 노릇이다.



그리고는 우리나라 사적은 안 지키고 남의 나라인 미국을 지켜준다고

버젓이 보초를 서고 있으니 쯧쯧쯧.

어디 가서 창피해서 말도 못하겠다.



사적을 위해 보초를 서는 것이 아니고 미국을 위하여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이 견학을 와도 가까이 가 보지 못하고

그냥 멀리서만 언덕 위에 저런 하얀 건물이 있구나 하고 돌아가야 한다.

그냥 와서 저 것이 아관파천의 그 건물이구나 하고 가는 것하고

직접 가까이 가서

이 곳이 고종이 덕수궁에서 탈출하여 정사를 보던 방이고 이 곳이 잠을 자던 방이야 라고

그 때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값진 교육일까?




고종이 정사를 돌보던 건물은 지금은 한국동란 시 없어지고 그 터에는 잡초만 무심하게

자라고 있다.

러시아 공사관 앞에 있는 저 꽃은 그 때의 그 슬픔을 알고 있는지.

- 끝-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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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편에 이어 -



아 아관파천

때는 바야흐로 1896년 2월 11일

대담하게 엄상궁은 고종과 왕세자인 순종을 모시고 덕수궁에서 러시아공사관으로

탈출을 성공한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정-순-헌-철-고-순 그 고종과 순종이다.

엄상궁의 그 탈출 전략은 후대에도 그 치밀함에 혀를 내 두른다고 한다.

그러면 엄상궁이란 누구인가?

1895년 일제에 의하여 명성황후가 살해되는 을미사면이 일어난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종이 엄상궁을 가까이 하였다. 고종의 승은을 받고

고종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얼굴은 예쁘지 않았고 나이도 고종보다 7살이나 위였다고 하니

그가 갖고 있는 머리와 책략이 고종을 사로잡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고종과 엄상궁이 같이 잔 것을 민비(명성화후)가 알았다고 한다.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명성황후의 입장에서 보면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것도 얼굴도 못 생기고 나이 많이 먹은 여자를 좋아 하다니 질투가 났겠지.

그래서 명성황후는 엄상궁을 궁 밖으로 쫓아낸다.

그 때 엄상궁의 나이 32세

지금은 얼마 되지 않은 나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인생 50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인생의 반 이상을 산 나이다. 지금 나이로 환산 해 보면 40이 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가부장적인 권위가 있었다고는 하나 명성황후가 고종의 총애를 받던 여자를

내 쫓은 것을 보면 여자의 파워도 막강했다고 생각된다.

하여튼

엄상궁은 궁에서 쫓겨나 다시 궁으로 돌아갈 날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1895년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사건이 발생한다.

일제가 남의 나라 왕비를 죽이고 고종과 순종을 볼모로 하여 조선을 지배하려 한다.

엄상궁 입장에서 자신의 최대의 라이벌 그리고 자기가 함부로 못하는

딱 한 사람인 명성황후가 없어졌으니 기다리던 절호의 찬스가 제대로 온 것이다.

자신의 가장 두려운 상대.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딱 한사람 그가 없어졌다.

이 기회를 그냥 지나갈 엄숭궁이 아니다.

엄상궁은 명성황후가 살해된 지 5일만에 입궁을 한다.

도도하게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이제 엄상궁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일본마저도 어떻게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고는 고종 곁에서 다시 고종의 두뇌로 자리를 잡는다.


[구러시아공사관에서 본 공원]


고종으로서는 일제에 의하여 감시 당하고 왕이면서 왕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것

그리고 왕비 시해사건으로 자신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 지도 모른다.

왕으로서의 역할을 못하는 것도 싫었고 더욱이 자기의 부인을 살해한 일본이 더더욱 싫었겠지. 그래서 엄상궁이 덕수궁을 탈출 할 것을 건의를 한다.

그리고 엄상궁을 믿는 고종은 엄상궁에게 맡기기로 하였겠지.

그래서 그 때부터 아관파천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한 여인에 의하여.

궁에 다시 돌아와 첫 번째 프로젝트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켜라.

목숨을 건 대 모험. 일제에 발각되는 날이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고

성공하면 고종의 아내로 들어가 통치의 최고의 위치로 올라

나라의 정치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

물론 자신을 믿는 고종이 뒤에 있다.

그 듬직함.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는 탈출을 위한 모략을 펼친다.


[구러시아공사관 앞 잔디 언덕]

매일 두 개의 가마로 궁을 출입을 한다.

그리고는 궁을 지키는 궁 졸들에게 수고한다고 수고비를 듬뿍듬뿍 준다.

그리고는 가마를 타고 임금님 있는 곳까지 간다.

원래 궁 안에서는 임금님 이외에는 가마를 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궁 안으로 버젓이 가마를 타고 드나드니 사람들의 소문은 어떡했을까?

오만 방자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그 것이 다 술수 였다니

- 3편에 계속 -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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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러시아공사관 내가 한국 사람 맞나?

토요일 오늘 고등학교 동기들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산에 가기로 한 날이다.

그런데 회사에 일이 있어 산에 가는 것 포기

회사에 출근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해서

구 러시아 공사관이나 다시 가보자.

blog에 러시아 공사관을 접근해서 보았으면 하는 cogen님의 생각도 나고

나도 다시 한 번 그 곳에 가보고도 싶고.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니



흥국생명 빌딩

아래 지하에 씨네큐브 광화문이 있는 빌딩

뒤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구 러시아공사관 들어가는 입구는

5월의 푸르른 녹음으로 진한 푸른색이다.


전경이 보초 근무를 서고 있다.

아래에 대기하던 전경들은 다 오늘 집회가 있어

출동 했는지 없고.

전경에게

구 러시아 공사관 좀 사진 좀 찍으면 안될까요?

"여기 들어가시면 안되는 데요"

"아 미 대사관은 안 찍을 거고 구러시아공사관만 찍을 거예요"

"그래도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신분증을 달래서 신분증까지 보여 주었다.

안 된단다.

그럼 신분증은 왜 보여달라고 한거야?

완강하게 출입을 막는다.

오늘은 미국 반대 시위 때문에 안 된다고

다음에 다시 오라고

그리고 사진을 찍으려면 밖에서 찍으라고

밖에서는 나무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이 남의 땅도 아니고

우리나라 땅에 마음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개인 소유 땅도 아니고 구러시아공사관이라고 표지판도 떡 하니 붙여놓고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가 있는 곳을 저렇게 방치하다니

100년이 흐른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우리나라는 누구의 땅인가?

미대사관도 덕수궁 자리에 남의 나라 궁궐 안에 있으며

사실 덕수궁도 경운궁으로 그 이름을 찾아야 한다.

덕수궁이란 왕위를 넘긴 선왕이 거처하는 보통명사라고 한다.

고유명사는 경운궁이 맞는 다고.

그 궁궐 우리나라의 궁궐근처에도 못 가게 막고 있으니.

그렇다고 그 곳이 군사적으로 아니면 정치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으로

꼭 들어가면 안 되는 출입통제 지역이지도 아닌 곳을



구러시아 공사관

사적 253호

설계자는 러시아 토목기사 사마틴으로 추측된다.

본관은 한국전쟁때 파괴되었고 현재는 3층 규모의 탑만 남아 있다.

[중략]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탑 부분과 지하층 일부만 남았었는데 1973년 현재와 같이 복원되었다.


표지판에 이렇게 쓰여있다.

미대사관이 옆에 있다고 구러시아 공사관에 접근도 못하게 하다니.

우리나라의 주권은 있는 것인가?

할 수 없지

앞으로 가서 다시 시작하자.

앞으로 가니 앞에서 지키는 전경이 있다.

"잠간 저 구러시아공사관만 찍으려고 하는데요"

"안되는데요"

"미대사관은 안 찍고 구러시아대사관만 찍으려고요"

"구러시아공사관만 찍으셔야 되요"



가까스로 구러시아공사관 앞쪽 길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사진을 찍다 보니 초등학생들이 견학을 왔나 보다.

들어가려 하니 전경이 앞을 막는다.

"저기 아저씨도 들어갔는데 왜 못 들어 가게 하세요"

나 때문에 들어온다.

그럼 여기까지 와서 우리나라 역사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들어가게 해야지 군사분계선도 아니고, 폭탄이 장착된 위험한 곳도 아닌데

그리고 초등학생이 미 대사관하고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공사관 안으로 가까이 들어 가지 못하는 것은 이내 아쉽다.

다음에 다시 시도해 봐야지

- 제 2편에 계속 -

Posted by 날으는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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